낯선 친구

부담스런 친구들이지만 시원스런 작별인사를 나눌 때까지는 잘 달래며…

어느 날부터인가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마다 방안이 빙빙 도는 것을 경험하면서 가정의를 찾게 되었다. 어지럼증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발길 돌리기를 몇 번 하면서 다른 의사의 소견을 들어볼 요량으로 지역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01_약물치료는 일시적, 이석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운동이 차선책

나의 머리를 침대 아래 좌우로 몇 번 떨어뜨리면서 어지럼증의 원인이 내 귀에 있는 이석이 제자리를 잡지 못해 생긴 것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바로 이석증이다.

일단 원인이 밝혀졌으니 내심 안심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는 것에 당황했다. 약물치료는 일시적인 방편이고 이석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운동이 차선책임을 알게 되었다.

운동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체를 곧추 세우고 앉아 좌와 우로 누워 각각 20초씩 버티는데 중요한 것은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약 45도로 돌려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다.

이 운동을 매일 조금씩 하면 어지럼증의 상태가 호전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어지럼증이라는 친구가 생기기 전에 이미 두 친구가 더 있었다. 그 중 한 친구는 나와 거의 반평생을 같이 지내고 있는데 이 녀석의 이름이 치질이다.

 

02_또 다른 친구는 불과 몇 해 전에 우연히 나를 찾아왔다

결혼 전까지 혼자 생활하면서 제대로 된 배변습관을 만들지 못해 생긴 것이다. 이 친구와 결별을 하기 위해 떼내는 수술을 벌써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나한테 무슨 정이 남아 있다고 이 친구는 남겨진 흉터에서 다시 자라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이제는 나도 지쳤다. 있는 것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산다. 가끔 내가 피곤해하면 이 친구도 하혈을 며칠 하면서 나에게 동정을 보내준다. 그것도 고맙게 받아들인다. 이제 더 이상 물리적인 방법으로 쫓아낼 생각이 없다. 한평생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더니 이 친구도 내 뜻을 이해하고 성깔을 더 이상 부리지 않는다.

오랜 인연의 치질 친구에 비하면 또 다른 친구는 불과 몇 해 전에 우연히 나를 찾아왔다. 어느 날 마당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던 나는 허리를 삐끗했다. 좋지 않은 자세로 장시간 일 한 것이 원인이었으리라.

 

03_우위를 점한 나쁜 박테리아들은 급기야 면역체계를 왕따 시키고

엉금엄금 기다시피 해서 방에는 들어갔지만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갖 민간요법을 다 동원해보았지만 차도가 없어 할 수 없이 성분이 강한 근육이완제를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약효는 있어서 운신은 할 수 있었지만 장에 미친 약의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좋은 균과 해로운 균 사이에 유지되던 세력균형이 급격히 깨진 것이리라

우위를 점한 나쁜 박테리아들은 급기야는 면역체계를 왕따 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불쑥 가려운 습진이 나를 찾아왔다. 엉덩이가 무거운 손님처럼 습진은 나의 이마에 아예 똬리를 틀고 앉았다.

처음에는 스토커로 경찰에 신고하여 온갖 치료법을 사용했고 강한 스테이로드 연고라는 접근금지 가처분까지 법원에 신청해 승인 받았지만 그 집요함에 이제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04_사회적 네트워크 범위 넓을수록 신체적 심리적 안정지수 높아

심지어 한국에서 저명한 피부과 의사를 만나 상담도 해보았지만 뾰쪽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보습제만 꾸준하게 사용 할 수밖에. 그 손님 역시 이제 자연스런 친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긍정적인 정서 수준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더욱이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 이웃 및 지인 등 상대적으로 관계거리가 먼 사람들을 중심으로 부차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적 네트워크 범위가 넓을수록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안정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나도 직장 동료뿐만 아니라 헬스장에서 매일 만나는 지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등산클럽 회원들과도 주기적으로 만나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매일같이 나를 따라다니는 이 주책없는 세 친구들은 사실 부담스러울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어쩌랴! 언젠가 시원스런 작별인사를 나누게 될 때까지는 잘 달래며 살아가야지.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챨스스터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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