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꿈틀한 문장

우리 선생님은 지렁이를 사랑합니다. 길게 길게 숨을 아껴가며, 몸통도 끊지 말고, 느릿느릿해도 좋으니 살아있는 지렁이를 쓰라고 합니다. 비 오는 날 텃밭에서 지렁이를 자주 봅니다. 아주 실한 놈도 있지만, 이제 막 운동장으로 나온 빠릿빠릿한 놈도 있습니다. 호미질을 하다가, 지상으로 떠오르는 지렁이는 충분히 반갑습니다. 뭇국에서 쫄깃한 소고기가 올라올 때 짓던 표정 알지요? 상상 속에 디룡이가 지룡이로, 드디어 체절동물 지렁이로 불리는 암수한몸, 모니터 속 우리도 자웅동체 맞습니다. 불멸의 흙 속으로 머리를 들이박고 고꾸라지고 뒤채이며, 낳고 또 낳아 더더욱 실한 지렁이 계보를 이어 가야지요. 바닥을 캐다 보면 언젠가 살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했으니까요.

 

우리 선생님은 지렁이를 오늘도 사랑합니다. 죽이지 말고 잘 가지고 놀라고 합니다. 지렁이가 살진 흙을 꾸역꾸역 토해놓은 듯, 글줄을 심어놓은 삐뚤삐뚤한 채마밭, 숨 들이마시듯 정성으로 싹을 밀어 올리라고 했지요. 햇살과 바람을 잘 버무려 가장 깊고 어두운 열매를 거두라는 말이지요? 새나 개구리만 떼 지어 우는 게 아닙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지렁이들도 기어 나와 떼 창을 합니다. 지렁이 합창소리에 뒤뜰이 영롱합니다. 우리의 벙커에 가득 찬 은유들, 별 마당에 모두 쏟아 붓고요. 한바탕 신명 나게 밤을 새우며 놀아볼까요. 넘치는 흥에 눈이 맑아 시문詩文을 찾으면요, 오감의 지렁이로 구르다 날개가 돋치면요. 어쩌겠어요! 책 밖으로 뛰쳐나가 날아다닐 수밖에요. 숨은 ‘거시기’ 찾기 (발췌)_황정산 (시인·문학평론가)

 

지렁이는 땅속에 숨어 사는 존재이다. 그런데 지렁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은유와 ‘흥에 눈이 맑아 시문을 찾는’ 신명이 찾아와야 가능하다. 그런 대단한 노력과 감흥이 있어야 시가 만들어지지만 그래 봐야 그것은 한 마리 지렁이처럼 그저 꿈틀꿈틀한 몇 개의 문장일 뿐이다. 시인이 찾아낸 ‘거시기’가 한 마리 지렁이일 뿐이라도 시인은 전심을 바쳐 문장을 만들고 시를 써야 한다. 그래야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작은 진실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 윤희경 시인의 시들이 바로 그것을 하고 있다.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신작 소시집-윤희경 / 신작시 / 작품론’에서

 

 

윤희경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2015년 미네르바 신인상 등단·2022년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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