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우리네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는 아니,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록다운이라는 이름 하에 NSW주정부가 정한 네 가지 필수사항 외에는 자유롭게 나다닐 수도 없게 된 요즘의 처지는 거의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 없습니다.
팔자에도 없는 ‘건물주’ 타이틀로 인해 1년 넘게 겪고 있는 엄청난 손실과 스트레스,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코리아타운 인쇄비 ‘70퍼센트 인상’ 폭탄, 거기에 설마설마 했던 코로나19 록다운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돼버린 요즘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거의 유일무이한 스트레스 해소 및 에너지 충전 돌파구 격인 여행과 낚시마저 못하게 된 상황이 가져다 주는 답답함은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다가옵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시작과 함께 록다운이 실시됐을 때는 그나마 낚시는 다닐 수 있어 숨통이 좀 트였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안되니 갑갑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겁니다.
처음 “중국 우한에서 박쥐로 인한 바이러스가 퍼져서 난리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는 “큰일이다. 얼른 괜찮아져야 하는데…”라며 그저 중국에서 당분간 그러다가 끝날 일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던 코로나19라는 괴물은 힘들게 개발해낸 백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델타변이라는 변종을 필두로 전세계를 계속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을 지배하며 우주정복까지 넘보고 있는 인간이지만 한낱(?) 바이러스 앞에서는 이토록 미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좀 나아질 만하면 옥죄어오는 코로나19… 보다 강력한 한 방으로 몰아내고 얼른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코리아타운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이스트우드 사무실을 전초기지로 삼은 상태에서 필수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재택근무를 하다가 일주일에 한번 목요일에만 한 자리에 모여 마감작업을 진행합니다. 저 또한 똑똑한 nbn 덕분에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우리 집 서재에서 온라인으로 작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무실에서 열댓 명이 북적대면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가끔 소주 잔을 부딪치던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지곤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들려오는 한국말이었습니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더니 뒷집 울타리 너머 벼리엄마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우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거 김치전인데 방금 부친 거라서 곧바로 드시면 될 거예요.”
코로나19 델타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반갑지 않은 록다운이 시작된 지 4일째 되던 화요일 이른 오후, 비도 오락가락하고 기분도 꿀꿀해서 대낮부터 우리 집 뒷마당에서 아내와 둘이 삼겹살 파티를 벌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몇 년째 펜스 하나로 등을(?) 마주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밥 한끼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는 뒷집입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도 훌륭하고 이른바 학군도 좋은 탓에 중국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동네에서 그 집은 우리의 유일한 한국인 이웃이 돼주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이웃 홍콩인 미셸네가 살 때도 담장 너머로 이런저런 것들을 주고 받으며 가깝게 지냈는데 지금은 정 많고 마음 따뜻한 벼리엄마가 그 자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만큼이나 이웃과 나누기를 좋아하는 벼리엄마는 문득문득 다양한 것들을 울타리 너머로 건네주곤 합니다.
그날 우리는 따끈따끈 맛있는 ‘벼리엄마 표 김치전’ 덕분에 두 점 남았던 삼겹살과 함께 그만 마시기로 했던 술잔에 좀더 많은 술을 채웠습니다. 여러 가지로 팍팍한 요즘… 여행도 낚시도 마음대로 못 다니는 상황에서 기분 좋은 이웃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지낼 수 있었던 겁니다.
추적추적 청승맞게 들리던 빗소리가 그 시간 이후로는 정겹게 다가왔던 걸 보면 모든 게 참 마음 먹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원수 같은 코로나19… 다음 주 금요일 록다운이 풀리고 나면 낚시터로 출동, 제일 먼저 잡는 물고기를 기분 좋은 이웃 벼리엄마한테 기분 좋게 선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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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