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들 좀 해라, 지겹다

대한민국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끝났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 질의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대부분 상대편 개인 신상 털기와 흠집내기다. 정쟁의 한마당이다. 민생은 관심조차 없다.

나훈아는 트로트 가수다. 그는 노래를 기막히게 잘한다. 그의 구성지기도하고 감미롭기도 한 창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다. 트로트 좋아하는 아줌마들에게는 완전 ‘오빠~’다.

음악평론가들은 일흔이 넘은 지금도 그의 음색이나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예전 그대로라고 한다. 분명 나훈아는 대단한 가수다. 나는 트로트를 별로 즐겨 듣는 편이 아니다. 때론 넘치는 트로트 콘텐츠에 식상하고 짜증이 난다. 게다가 가끔은 왠지 청승맞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렇게 표현한다고 해서 나훈아 광팬이나 트로트 예찬론자들은 나에게 시비 걸지 마라. 내가 듣기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듣기 좋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개인의 성향인 호 불호를 가지고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시비 거는 덜 떨어진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청년 때부터 지금까지 록, 발라드, 랩소디 등을 즐겨 듣는다. 나의 음악성향이다.

나훈아가 지난 9월 마지막 날, 15년만에 KBS2에 콘서트로 방송에 등장했다. 시쳇말로 난리가 났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희화화한 ‘테스형’이라는 신곡을 부르자 무슨 신조어라도 탄생한 듯이 개나 소나 테스형 테스형 하면서 자존심도 없이 여기저기서 패러디 하느라 요란법석이다.

나훈아의 콘서트를 본 어느 연예담당기자는 “이 사람이 사이비 교주나 부정부패 정치인 같은 거 했으면 진짜 나라가 망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 홀리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고 기사를 썼다. 언론에서는 ‘상남자 나훈아’ ‘가황 (歌皇) 나훈아’ 운운하면서 극찬을 했다. 콘서트의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콘서트에서 나훈아가 인사말을 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힘듭니다.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그 동안 대한민국 5천년 역사에서 위기가 왔을 때 왕이나 대통령은 항상 도망갔다고 합니다.”

말인즉 맞는 말이다. 조선시대 선조라는 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성들은 약탈을 당하든, 겁탈을 당하든, 죽든 살든 나 몰라라 하며 입만 열면 백성을 하늘처럼 위한다던 중신 무리를 거느리고 중국 땅이 지척인 의주로 도망갔다. 여차하면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내뺄 심산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광해군을 반정으로 뒤엎은 인조라는 왕은 병자호란 때 백성들을 내팽개쳤다. 중신들 몇을 거느리고 강화도로 달아나려다 재빠른 오랑캐의 기병에게 길이 차단되자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었다.

6.25전쟁이 터지자 국부로 추앙 받던 이승만 대통령은 하늘처럼 아낀다는 국민들에게 죽어도 함께하고 살아도 함께하자고 호소했다. 수도 서울을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사수하겠다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런 후 아부하는 떨거지들과 함께 남쪽으로 야반 도주했다. 그것도 모자라 한강다리를 폭파해버려 서울시민들은 무수히 죽었다.

어쨌거나, 나훈아의 인사말은 자신의 콘서트 자리를 꽉 채워준 대중들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나타낸 표현이었을 거다. 그런데 그의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여러분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라는 인사말이 정쟁의 도구로 악용돼버렸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이를 소재 삼아 정부 여당 공격에 나섰다. “현 정권은 법무부와 검찰,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장악했다. 나훈아의 이 말은 우리 국민에게 남은 것은 국민 저항권 밖에 없다는 뜻이다”라며 나훈아가 속 시원한 비판을 했다고 했다.

그러자 여당은 야당의 아전인수가 놀랍다며 정쟁을 위해 나훈아의 발언을 이용하지 말라고 했다. 덧붙여 “나훈아 발언의 핵심은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이 나라를 지켰다는 것 즉,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고 맞섰다. 국정감사 자리까지 등장한 나훈아는 역시 대단하다.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을 이런저런 곳에서 써먹는 거야 민망하기는 하지만 뭐 그렇다 치자. 하지만 콘서트에서 한 인사말까지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거야말로 정치를 혐오하게 만드는 거다. 별별 것을 다 정파적으로 악용하고, 한낱 노래하는 가수까지 끌어들이는 한국정치. 정말 지겹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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