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생·역·전 – 인간의 허세에 관하여

챕터 I

그녀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땅거미가 스며드는 길 위를 터벅거리며 걷는데 저 앞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뚱이의 개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동물들의 삶과 죽음을 가슴으로 보듬는 수의대 5년차인 그녀는 개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치는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녀는 개를 내려다 봤고 개는 그녀를 올려다 봤다. 그녀는 개에게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집에 가야지, 왜 여기에 있니? 여긴 위험한 곳이야.” 개는 말이 없었다. 어스름 속에서도 개의 눈은 초롱했다. 그녀는 개의 눈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봤다.

개는 지나쳐가는 그녀를 터덜터덜 따라왔다. 돌아가라고 손짓하는 그녀를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눈빛이 그녀를 머뭇거리게 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주인이 버렸구나. 갈 곳을 잃고 굶주렸구나.’ 유기견보호소로 보내주겠다는 마음으로 녀석에게 말했다. “같이 가자. 오늘 저녁은 나랑 지내고 내일 애완동물을 허세의 목걸이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싫증나면 버리는 너희들이 모여있는 그 곳에 데려다 줄게.”

그녀는 녀석에게 밥을 챙겨줬다. 녀석은 몇 끼 굶은 듯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감사하다는 듯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녀석의 눈빛은 맑고 순수했다. 그 눈빛과 마주친 그녀는 순간 이 아이와 헤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전율이 온몸을 흔들었다.

 

챕터 II

그녀와 함께 사는 두 고양이는 녀석을 경계했다. 흘겨보다가 무시하듯 외면했다. 이방인의 외롭고 서러운 눈치를 받으면서도 녀석은 두 발 위에 주둥이를 묻으면서 떠날 몸짓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알았다. 떨쳐 보낼 수가 없구나. 너를 만난 것이 하늘의 뜻인가 보구나.’

그녀는 부모에게 부탁했다. “나 졸업할 때까지 얘 좀 돌봐 주세요. 길에 버려진 애예요. 이름도 모르는 사내아이예요. 검사해보니 태어난 지 몇 개월 안됐어요. 생명이에요. 고양이 두 마리 돌보다 보니 얘까지 돌보기가 힘들어요.”

녀석은 자연스러운 교배로 태어난 잡종이었다. 아버지는 섞여있는 녀석이 짬뽕 같다고 ‘잠봉’이라는 새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사람에게 버려진 녀석은 또 버림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잠시도 식구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잠도 부모 침대에서 함께 잤다. 유난히 사람을 따르는 잠봉이는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평온해져 갔다.

잠봉이는 동물훈련업체에 등록됐다. 매주 목요일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달리기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견생 (犬生)을 즐긴다. 여러 종 (種)들이 어울리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우뚝하다. 뛰어 놀고 등산하고 돌아와 목욕하고 나서 던져주는 과자 받아먹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굶주리며 길 위를 헤매던 그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견·생·역·전 (犬生逆轉)이다. 인생이든 견생이든 역전의 힘은 사랑이다.

 

챕터 III

공원에 사람들이 모였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다 보니 서로가 얼굴이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흐린 날인데도 습관처럼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아저씨가 데리고 나온 개에게 바람 빠진 테니스 공을 던지고 덩치 큰 개는 멋지게 하늘로 솟구쳐 올라 공을 물어온다. 공원 이곳 저곳에서 사람과 개들이 어울려 치고 닫으면서 체력단련을 하는 놀이마당이 활기차다.

한바탕 체력 단련이 끝나자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크고 작은 개들은 개들끼리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개들은 반가운 듯 서로를 건드리며 빙빙 돌면서 똥꼬에 코를 들이밀고 흠흠 냄새 맡으며 친교의 시간을 나눈다.

사람들은 공원 벤치 주위로 모여들어 대화를 나눈다. “당신네 개는 무슨 품종인가요? 셰퍼드예요. 독일산이군요. 용감한 종이죠. 마약 탐지견으로도 활동하지요. 비싸죠? 그럼요, 엄청 비싸요. 아줌마네 개는 무슨 종 인가요? 리트리버예요. 종류가 고급이라 먹는 것도 고급이에요. 사료 값이 엄청나요. 와우! 대단하네요. 맹인 안내견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죠. 우리 개는 말티즈 예요. 저 개는 비숑이네. 우리 아이는 요크셔테리어예요. 진짜 고급스런 품종들이죠.”

잠봉이와 함께 산책 나온 아버지 어머니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댁의 개는 무슨 종인가요? 우리 개요? 시고르자브종이예요. 아! 프랑스 산이군요. 비싸겠네요.”

잠봉이는 프랑스 산이 아닌 시고르 (시골) 자브종(잡종)으로 값도 별볼일 없는 똥개다. 그렇지만 식구들에게는 따뜻한 사랑 받는 생명이다.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셈하는 인간이라는 종 (種)이 참 마뜩잖다. 사랑은 품종으로, 값으로 메겨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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