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져다 준 봄

오늘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추웠던 어느 겨울을 기억한다. 우리의 사업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공장 문을 닫던 그날도 오늘처럼 바람이 불었다. 일주일간 꼬박 공장에 있는 물건들을 집 창고로 날랐다. 마지막 짐을 차에 싣고 집에 가려는데 도와주던 작은 아들이 안보였다.

 

01_은구슬처럼 반짝이던 아들의 눈물

곧 공장 모퉁이에 앉아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달빛이 환해 아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은구슬처럼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울컥 설움이 복받쳤지만 솟구치는 감정을 내려 눌러야 했다. 집에 가자며 손을 내밀어 아들을 일으켜 세웠다. 어둠 속에서 새까맣게 먼지를 뒤집어쓴 우리의 눈망울만 반짝거렸다.

아들이 옷소매로 쓰윽 눈물을 닦으며 우린 젊다고 했다. “그래.” 그런 대답을 한 나는 그만 주저앉아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힘들게 이루어놓았던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잃어버려야 하는 그 절망감… 그 순간만큼은 절대 잊어서도 잊을 수도 없는 우리에게 가장 추웠던 겨울이었다.

모든 걸 빨리 잊고 싶어 상처가 아물 틈도 없이 직장을 구했다. 절망의 계곡에서 내 손을 잡아준 곳은 Belrose에 있는 Wesly Garden이라는 양로원이다.

Manager에게 이끌려 들어선 곳은 Banksia, 이곳은 구십 퍼센트 이상이 치매 환자다. 간혹 정신은 괜찮은데 몸을 못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새벽 6시, 그곳을 들어서는 순간 상상도 못할 일을 보았다. 어둑한 복도에 몇몇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언가 호소하는 눈빛들이었다.

 

02_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숨쉬고 있다는 게…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떤 할머니가 날 보더니 대뜸 팔짱을 끼었다. 키가 큰 할아버지는 바지도 안 입고 기저귀 옆으로는 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또 할머니 한 분은 울며 “Help!”를 외치고 다녔다.

팔짱을 낀 할머니는 종일 나만 쫓아다녔다. 내 팔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듯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어느 방에 들어가 보니 뼈만 남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인기척에 손가락을 움직여 당신이 살아있다는 표현을 보냈다.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쉴 틈 없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나의 선택에 후회가 안 될까?’ 첫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오며 망연자실 하여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03_환자의 차디찬 손을 내 겨드랑이에 끼어…

우린 젊다고 하던 아들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휭휭거렸다. 일주일이 지나고 Training 기간이 지나 정식 직원이 되어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Nursing Care… 그곳은 더욱 참혹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얀 보자기를 씌워 들것에 실려 가는 시신을 보아야 했다. 그런 모습을 환자들이 보면 자기 자신의 일인 듯 온몸을 떨었다. 자동문이 닫히면 우리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문 앞을 지키는 보초병이 되었다.

그때부터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 나는 방마다 들어가 환자의 차디찬 손을 내 겨드랑이에 끼어 녹여주곤 했다. 그런 나를 모두 천사라 불렀다. 그래서 더욱 나는 천사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라 할머니를 만난 것이 그 즈음이었다. 우린 서로 너무 좋아했다. 나는 그 할머니가 너무 착해서 좋았고 그 할머니는 내가 차가운 손을 가슴에 품어 녹여주는 따스함을 좋아했다.

 

04_내 인생의 따뜻한 봄바람이 돼준 그들과의 교감

그런 어느 날, 그 방에 커튼이 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따스한 차를 들고 방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지 않은가. 여느 때 같지 않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만져드렸더니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닦아도 닦아도 그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Don’t cry, please” 할머니 귓속에 조용히 속삭여주었다. 그러고 바짝 마른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할머니는 내 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건과 사고 (思考) 속에 나의 인생도 굳게 여물어갔다. 세월이 흘러 우리 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사라 할머니가 남기고 간 체온은 더욱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용기의 불씨가 되어주었다.

그때 우린 젊다고 울먹이던 아들은 박사가 되었다. 이제 나는 그때를 그리워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추었던 겨울이 죽음을 앞둔 양로원의 환자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그들과의 교감은 내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이 되어주었다. 오늘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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