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데 살면 참 좋겠다…

10년쯤 전에 그런 생각을 꽤 진지하게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데 살면 참 좋겠다.’ 이스트우드로 들어오기 전, 우리는 1년여에 걸쳐 여러 지역으로 인스펙션을 100번도 훨씬 넘게 다녔는데 그 중 한 곳이 듀랄 (Dural)이었습니다.

5에이커, 그러니까 2만 스퀘어미터… 6000평이 넘는 넓은 초원 위에 예쁜 집을 짓고 그곳에서 강아지며 고양이며 닭이며 오리들도 키우고 텃밭에서 각종 채소들도 가꾸는 전원생활을 그렸던 겁니다. 곳곳에 심어져 있는 다양한 과일나무들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듀랄의 한 저택을 접했던 우리는 한동안 그런 집에 꽂혀서(?) 지냈습니다. 탁 트인 앞마당에서는 대형분수가 힘차게 물줄기를 쏘아 올리고 있었고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호수(?)까지 있던 그 집은 끝이 잘 안보일 정도였습니다. 주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열 마리도 넘는 강아지들의 모습은 우리가 꿈꿔오던 바로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요즘에도 시드니에서 한두 시간 혹은 서너 시간 벗어난 예쁜 마을에 가면 예외 없이 ‘이런 데 들어와 살면 참 좋고 편안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랑 회사건물 모두 팔면 은행 론도 다 갚고 돈 걱정은 물론, 이것저것 신경 쓸 일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사 일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것들을 다 처리할 수 있는 데다가 특히 코리아타운은 업무시스템이 잘돼 있어 지금도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사장 없이도 일을 척척 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회사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 남짓에 불과합니다.

시드니에서도 밤 하늘의 별은 예쁘지만 그곳들에서 만나는 별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세상을 살짝 등지고(?) 살면서 작은 농사(?)와 낚시 그리고 여행을 즐기는 생활…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시드니로 나와 사람도 만나고 한국식품 쇼핑도 하고 볼일도 보고…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고민 끝에 우리가 우리의 둥지를 최종적으로 이스트우드에 튼 것은 다름아닌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그 넓디넓은 땅도 조금씩 버겁게 다가올 것이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움 같은 것도 적지 않을 터입니다.

지금이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병원이며 약국이며 한국식품점이며 한국식당 등 한국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든 것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면 여러 가지 불편함은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집 뒷마당에서는 자카란다가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네 위는 물론, 잔디밭 전체에 보라색 눈꽃들이 수북수북 쌓여 있습니다. 상추며 깻잎을 비롯한 각종 야채들도 풍년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아내와 저는 뒷마당에서 커피나 차 마시는 시간을 부쩍 자주 갖고 있습니다. 가끔 커피잔 안을 파고드는 자카란다 꽃은 우리 행복의 크기를 무한대로 늘려줍니다.

내일은 자카란다의 풍요 속에서 아내의 생일파티를 갖기로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의미 있는 날인만큼 좀더 색다르고 맛있는 곳으로 갈 것을 원했지만 우리는 완곡히(?) 사양을 했습니다. 애써 만들어놓은 예약까지 취소한 아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내와 저는 여느 공원 못지 않은 우리 집 뒷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보랏빛 눈꽃 위를 신나게 뛰어다닐 우리의 1등 에너지공급원 에이든 그리고 오빠와 함께 그곳을 달리고 싶어 몸을 주체하지 못할 또 다른 1등 에너지공급원 에밀리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1년에 한번 주어지는 이 보라색 향연을 공유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데 살면 참 좋겠다…’ 그 짜릿한 유혹을 끝까지 뿌리치지 못한 진짜 이유는 어쩌면 바로 이 속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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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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