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

교도소에 들어와 사흘째 되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교도관이 감방 앞에 와서 “5265번 11시 접견!”이라고 했다. 둘째 형님과 셋째 형님이 면회 왔다.

나를 업어 키우다시피 한, 아버지같은 둘째 형님이 그랬다. “우리는 네가 사람을 패고 물건을 뺐었다고는 절대 믿지 않는다.” 나는 형님들에게 말했다. “형님들이 그렇게 믿는다면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징역살이하겠습니다.”

둘째 형님이 영치금을 넣어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사식이라도 넣어주겠다고 했지만 그마저 사양했다. 가정교사하면서 나를 공부시킨 형님께 너무 죄송했고, 깡보리밥에 반찬이라고는 무장아찌가 주로인 관식 먹는 감방동료들 앞에서 나 혼자 잘 차려진 사식을 먹을 자신도 없었다.

후에, 구속에서 풀려난 후에야 알았지만, 둘째 형님은 나를 면회한 다음 추운 새벽마다 담당검사 집을 찾아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다 출근하는 검사에게 “내 동생은, 내 동생은…”하면서 울먹였다. 검사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계속해서 찾아오는 형님에게 검사 부인이 자초지종을 물었다. 형님은 설명도 하지 못하고 그냥 내 이름만 되풀이하면서 울었다. 검사 부인이 말했다. “검사님은 바른 분이십니다. 이제 그만 오세요.”

형님들이 다녀간 다음날 사업하는 친척 형님이 면회 왔다. 감방동료들은 연일 면회실로 나가는 나에게 부러움의 눈초리를 보냈다. 친척 형님이 영치금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역시 사양했다. 뭐가 어찌됐든 죄수복 걸친 내 모습에 스스로 분노가 치밀어 영치금을 받는다는 사실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뭐라도 넣어주겠다는 친척 형님의 말씀을 거절하기가 그래서 동료들과 나눠 먹으려고 건빵 몇 봉지 넣어달라고 했다.

반호식이라는 죄수가 있었다. 호식이는 중학교 중퇴, 20살이었다. 나를 대학생 형님이라면서 따랐다. 호식이는 판자촌에서 살았다. 호식이가 어렸을 때 가난한 호식이 아버지는 추운 겨울에 술을 왕창 마시고 길 위에 쓰러져 자다가 죽었다. 누나는 오래 전에 어디론가 가버렸고 두 여동생이랑 행상하는 엄마랑 살았다.

호식이는 공사판에서 일하다 팔이 부러진 다음부터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했다.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한밤중이나 꼭두새벽에 부잣집 담을 넘어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담치기’가 됐다.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부딪쳐 들고 있는 물건을 빼앗아 도망치는 ‘퍽치기’도 됐다.

호식이는 자진해서 식사준비담당을 했다. 취사담당죄수들이 복도로 밥통을 밀고와 “식사준비!”라고 외치면 식구 통으로 밥그릇 반찬그릇을 내주고 채워주는 그릇들을 돌려받아 감방동료들에게 나눠줬다. 식기도 씻어서 정리했다.

친척 형님이 면회하고 간 오후에 내 앞으로 놀랍게도 건빵 100봉지가 들어왔다. 호식이가 감방에 건빵이 산처럼 쌓였다며 어쩔 줄을 몰랐다. 호식이가 물었다. “형님, 이거 선반에 쟁여놓을까요?” 나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전부 나눠주라고 했다. 건빵 몇 봉지씩 받은 동료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호식이는 건빵봉지를 허리춤에 빙 둘러 꽂고 싱글벙글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감방장이 호식이와 나를 째려보면서 말했다. “초짜라 모르는가 본데, 여기 들어오는 물건은 감방장이 알아서 한다. 건빵 모두 걷어!”

나는 “뭔 개떡같은 소리야. 나 한데 들어온 거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험악한 말싸움이 벌어졌다. 나와 같은 날 감방에 들어와 친해진 별 다섯 개 명환이 거들었다. “아, 씨발! 주인이 마음대로 헌다는디 좆같이 개지랄이네!”

건빵을 나눠 받은 동료들도 내놓을 마음이 없었다. 그때까지 감방 분위기에 통박을 굴리며 눈치를 보던 명환이 날뛰었다. 감방장과 명환이 엉켜 붙었다. 교도관이 몽둥이로 감방 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질렀다. “이 개새끼들 다 죽을래?”

밤이 깊어지자 취침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뭉텅뭉텅 솜이 빠지고 때 절은 이불들이 펼쳐지고 언제나처럼 가운데자리에 감방장이 이불을 둘러쓰고 누웠다. 나는 여전히 이가 옮을까 봐 담요로 몸뚱이를 감고 화장실 앞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웠다.

내 옆에서 이불 덮고 누워있던 명환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감방장에게 말했다. “너, 가운데서 나와! 씨펄놈아. 니가 그자리 전세 냈냐? 끝에서 자니까 추워 죽겄네. 나랑 자리 바꿔!”

입술이 터진 감방장이 부스스 일어났다. 명환이를 흘끗 쳐다보더니 일어서서 문 기둥에 설치돼있는 패통을 쳤다. 나무 막대가 탁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떨어졌다. 잠시 후 교도관이 감방 문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어떤 새끼가 패통 쳤어?” 감방장이 힘없이 말했다. “전방!”

감방장은 밥그릇 숟가락을 챙겨 들고 다른 감방으로 옮겨갔다. 어제까지 감방장을 따르던 동료들은 건빵 몇 봉지에 쉽게 등돌렸다. 그날 밤 명환이 나보고 감방장 하라고 했다. 나는 사양했다. 명환이가 감방장이 됐다. 감옥이 세상이었고, 세상이 감옥이었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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