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

가마우지는 가마우지과의 물새다. 날개 길이는 40cm가량 되는데 몸은 검고 등과 죽지에 푸른 자주 빛 광택이 난다. 부리가 길고 발가락에 물갈퀴가 있으며 날지 못한다.

끝이 구부러진 긴 주둥이와 긴 목으로 물고기를 재빠르게 낚아채고 큰 물고기를 쉽게 삼킨다. 아시아, 호주 등에 널리 살고 있으며 중국 남부와 일본의 일부 지방에서 물고기잡이에 이용한다.

가마우지 낚시는 가마우지의 목 아랫부분을 끈으로 묶어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한 다음, 그것을 꺼내는 낚시방법이다.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잡아 올리면 주인이 가마우지의 입을 벌려 입안 깊숙이 있던 물고기를 꺼내놓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고를 되풀이 한다.

신선이 산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중국의 계림 지방, 그곳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가마우지 새를 이용한 낚시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어부는 이른 새벽 가마우지를 쪽배에 태우고 강으로 나간다. 강 한가운데에 이르러 가마우지의 목을 묶으면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린 가마우지는 능숙한 솜씨로 물고기를 낚아 올린다.

이렇게 물고기를 몇 마리 잡은 뒤 이제 됐다 싶으면 어부는 가마우지의 목을 풀어주어 가마우지가 마음껏 물고기를 먹게 한다. 가마우지가 배가 불러 더 이상 물고기 사냥을 하지 않을 때까지 어부는 기다린다. 해질녘이면 어부는 가마우지와 함께 붉은 노을 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늙은 가마우지는 더 이상 낚시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부터 어부는 가마우지의 목에 물고기를 넣어주면서 삼키게 해준다. 가마우지가 잡던 고기를 어부가 직접 잡아서 가마우지에게 먹여주는 거다.

드디어 가마우지가 죽는 날이 가까워온다. 어부는 푸르고 따뜻한 날씨 좋은 날을 받아 가마우지를 품에 안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오른다. 돗자리를 펴고 조그만 상에 잘 익은 술 한 병을 올려놓고 가마우지와 마주 앉는다.

한참 동안 가마우지를 쳐다보는 어부의 눈에는 은혜와 감사의 정이 가득하다. 이윽고 어부는 정성스럽게 술을 따라 가마우지의 입에 부어 넣어준다. 늙고 힘없는 가마우지는 정성스러운 그 술에 깊이 취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긴 목을 땅에 눕힌다. 평생을 동고동락해온 가마우지의 몸을 쓰다듬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쏟는 어부의 머리도 어느새 하얗게 세어 있다. 오래 전에 읽었던 가슴저린 가마우지 이야기다.

네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네 아내는 넥타이를 고쳐 매어주고 뒤따라오며 양복 저고리 어깨 위의 먼지를 털어주며 하루의 안녕을 기원했다.

아이들이 태어났고 아장거렸고 뛰어다녔다. 아이들은 어느새 쑥쑥 자라 네 구두도 닦아놓았다. 삶의 강에 조각배를 띄우고 모질고 험한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엎어지지 않고 물고기를 낚아 올리며 성실히 사는 너를 네 아내는 자랑스러워 했고 네 아이들은 존경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울었다.

어느 날 아침부터 너는 강으로 나갈 일이 없어졌다. 저녁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올 일도 없어졌다. 늙고 힘없는 가마우지처럼 물고기를 잡아오지 못했다.

국회의원도 못해보고, 장관도 못해보고, 고급공무원도 못해보고, 장성도 못해보고, 쌓아놓은 물고기도 없는 너를 네 아내는 더 이상 존경하고 자랑스러워 하지 않았다.

장성한 아이들도 더 이상 너를 존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았다. 네가 할 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투자를 할 줄도, 장사를 할 줄도, 거간질을 할 줄도 몰랐다. 네 아내는 대체 할 줄 아는 것이 뭐냐고 빈정댔다. 돈도 없는 것이, 돈도 못 버는 것이 아는 체 말만 많다고 경멸했다.

평생을 자맥질하며 물고기를 건져 올린 수고에 대한 은혜와 감사의 정은 어디에도 없다. 네 아내는 교회로, 골프장으로, 친목모임으로 나다니면서 개수대에 먹고 남은 그릇들을 쌓아둔다. 너는 그 그릇들을 설거지 하면서 가마우지처럼 살아온 날들을 잊고 싶다고, 치매에 걸리고 싶다고, 신탁을 원 하듯 끝없이 중얼거린다.

치매는 현재에 가까운 기억들을 지워간다고 했다. 치매는 지나간 옛날이나 또는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간추려서 되새기고 재조합 하는 과정일 것이라고 했다.

가마우지의 황혼은 사양 (斜陽)처럼 은은 했지만, 네 황혼은 가을낙엽처럼 메마르고 쓸쓸하다. 혹시 당신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의 남편은 가마우지라는 걸. 너희들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는 가마우지라는 걸.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Previous article여행의 추억?!
Next article코리아타운 특별기획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