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든 에밀리 할매•할배라 행복해요!

두 녀석 다 아주 신이 났습니다. 집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그야말로 입이 함박만해졌습니다. 하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할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 지들에게는 가히 천국이나 다름 없었을 겁니다.

얼마 전, 갑자기 두 녀석과 하룻밤을 같이 지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밤 아홉 시가 다 된 시간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녀석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절대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에이든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간다는 말에 내복(?)차림에도 지가 먼저 집을 나섰고 에밀리도 덩달아 허둥댔다고(?) 합니다. 지들을 집안에 들여놓고 곧바로 돌아서는 엄마 아빠는 이미 녀석들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녀석들은 한참 동안 못 만났던 것처럼 우리한테 안겨 재잘거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이면 저녁밥을 먹었을 텐데도 이것저것 열심히 먹고 집안 곳곳도 한껏 휘젓고 다녔습니다.

무엇을 하든 간섭도 안하고 지들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당연히 녀석들에게는 최고일 겁니다. 아무래도 지네 집에서는 엄마 아빠가 이런 통제와 저런 간섭을 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우리는 에이든 에밀리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주려 노력합니다. 다만, 도가 지나치다 싶거나 지 엄마 아빠가 안 된다고 정해놓은 부분은 우리도 절대 뒤집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저녁 아홉 시쯤 되면 꿈나라로 가는 녀석들이 밤 열두 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 되도 눈망울이 초롱초롱합니다. ‘그래, 모처럼의 기회이니 실컷 놀다 자라’ 싶어서 내버려뒀습니다. 이윽고 새벽 한 시 반… 에이든의 눈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희한하게도 할머니 할아버지 집 거실에 이불을 펼쳐놓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함께 자는 걸 좋아합니다. 가끔 지 엄마 아빠가 “오늘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간다”고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랑 바닥에서 자고 오겠다”고 하는 녀석입니다.

사내아이인데도 유독 마음이 여리고 잔정이 많은 에이든이 바닥에 깔린 이불에 눕더니 저를 불러서는 제 팔을 베고 특유의 살인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그리고 잠시 잠깐 후 녀석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천사의 모습이 그런 걸까…. 그렇게 잠시 동안 천사의 선물을 듬뿍 받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녀석의 앙증맞은 입술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한번 해주고는 녀석의 목에서 조심스레 제 팔을 빼냈습니다.

우리의 또 다른 천사 에밀리는 어디에 있을까? 좀 미안한 얘기이지만 오빠보다도 몸무게가 좀더 나가는 듯한 착각을(?) 주는 에밀리는 요즘 여자아이답게 공주 옷, 특히 엘사공주 옷을 즐겨 입습니다. 녀석은 짓궂은 할아버지가 지어준 별명 ‘먹신(먹神)’답게 손에 약과 한 개를 쥔 채 소파에 기대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남매 아니랄까 봐 에밀리는 지 오빠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곤 하는데 오빠가 잠이 들자 지도 따라서 잠이 든 겁니다.

에밀리를 안아 에이든 옆에 눕혀놓고 나서 우리는 그 늦은 시간에 헤이즐넛 향 커피 한잔씩을 들고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곤히 잠들어 있는 두 녀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경우는 그래도 할머니, 아버지, 고모 여럿에 친척 형제자매들도 있었지만 저는 어머니와 단둘인 삶을 오랫동안 살았던 터라 문득(?) 제 앞에 나타나준 아내와 우리 아이들 그리고 이 두 녀석이 너무너무 감사하고 소중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녀석들을 매일매일 끼고 살고 싶지만 어차피 내 새끼들이 아니기(?)때문에…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일수록 늘 붙어 지내는 것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지내는 게 좋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녀석들을 가까이 두고도 늘 그리워하며 지냅니다. 어쩌다 녀석들이 우리집에 온다고 하면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반갑고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 클 때는 제대로 못 느꼈던 기쁨을 내 자식의 자식들을 통해 새삼 느끼는 건 비단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에이든과 에밀리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 모양과 색깔을 달리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녀석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사랑과 행복을 우리의 행복바구니에 듬뿍듬뿍 담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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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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