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준 선물

어울리지 않는 청국장과 포도주라! 홀로 하는 근사한 저녁을…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밥 냄새가 참 좋다. 딸아이가 잠깐 들리겠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밥을 안쳐놓고 식품점으로 달려가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사왔다. 뜸이 들고 있는 밥 냄새를 맡으며 부지런히 호박과 파를 썰어 넣고 청국장찌개를 준비했다.

 

01_엄마! 들리지 못 할 것 같아. 집으로 바로 가야겠어요

딸과 시간을 보낼 생각에 벌써 내 마음은 들떠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들리지 못 할 것 같아. 집으로 바로 가야겠어요.”

 

“어? 그래.”

‘네가 좋아하는 찌개 끓여 놓았는데…’ 말을 하려다 말고 “알았어. 운전 조심하고… 뚜….”

바삐 가야만 하는 딸의 마음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이 넷을 낳고 사는 딸은 항상 분주하다. 거기에다 일까지 한다. 물론 사위가 집안일과 육아도 많이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위가 잘 도와준다고 해도 여자가 하는 일은 따로 있는 것, 딸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려온다.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나 하이스쿨 다닐 때부터 딸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딸은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02_딸이 가슴에 묻어뒀던 그 꿈, 머지않은 날 꼭 이루리라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우리 부부는 딸이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도 가보고 그 또래 문화를 마음껏 누리면서 살아 보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딸은 뜻하지 않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직장생활은 계속 되었고 대학원 공부도 마쳤다.

거기에다 대학 강단에 서겠다며 박사학위 공부도 시작 했지만 계속되는 아이의 출산으로 중단해야만 했다. 나는 딸이 가슴에 묻어 두었던 그 꿈을 머지않은 날 꼭 이루리라 믿는다.

시간이 될 것 같아 잠시 들리겠다던 딸의 전화에 모처럼 딸과 단둘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나는 들떠있었던 것 같다.

딸 옆에는 몸의 혹처럼 손주들이 늘 붙어 다닌다. 여러 해를 아이들 낳고 키우느라 수고하는 딸은 항상 내 가슴에 애처롭게 남아 있다.

 

03_뭉게구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하늘을 향해 와인 잔을…

어쩌다 엄마 집에 와서 식사라도 같이 한다 치면 입이 짧은 딸은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며 밥 한 공기를 눈 깜짝할 사이 비어 치운다. 그런 딸이기에 들르겠다는 소식에 편안히 밥 먹여 보내려는 어미의 마음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혼자 시간을 낼 수 있었는지, 딸도 엄마와 데이트 할 요량이었던 것 같다. 방해 받지 않고 딸과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하면서 무척이나 행복했는데 못 온다니 조금은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밥상을 차렸다. 숟가락, 젓가락 옆에 노란색 내프킨을 곱게 접어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Ciana (적포도주) 한잔도 빼놓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청국장과 포도주라! 하… 어떠랴! 홀로 하는 근사한 저녁을 딸이 선물한 셈이다. 딸아! 고맙다. 창문 넘어 하얀 뭉게구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하늘을 향해 와인 잔을 높이 들었다.

 

글 / 클라라 김 (글벗세움 회원·Support Wo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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