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가만히 계시면 되는 걸… 노인네가 청춘인 줄 아세요?”
“어이쿠!” 하며 나무에서 떨어졌다. “와당탕!” 소리에 놀란 며느리가 사색이 되어 달려 나왔다. 부러졌나? 눈앞이 캄캄했다. 뒤따라 나온 아들과 아내의 표정에 내 가슴이 덜컥 하고 내려앉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들을 진정시키며 가까운 병원에 실려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01_와달라고 하니 고마울 뿐… 예쁜 손녀 얼굴이 아른거렸다
아침산책 15분 길… 아들이 운동 삼아 자전거로 출근하는 길이라 했다. 지난 여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큰아들 집 방문은 가자마자 이렇게 막을 내렸다.
차에서 불편하게 쓰러져있는 황망한 내 모습과 하야게 질린 아들 모습만 실루엣처럼 교차하며 시드니로 돌아온 지금까지 머릿속에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남아있다.
큰 녀석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을 위해 학군 좋은 동네로 이사했다고 소식을 전해온 것은 두어 달 전이었다. 회사 일 하며 틈틈이 낡은 집 손볼 일이 많아 금년엔 호주에 못 가니 손녀딸을 보러 오셨으면 했다.
두 아들이 모두 좋은 회사에 취직도 하고 독립하며 일찌감치 자기들 집을 마련했다는 건 나의 뿌듯한 자랑이었다. 50이 넘어서야 어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집을 마련한 나로선 대견함을 넘어 ‘저것들이 내 아들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해준 것도 없었고 이젠 더 해줄 것도 없어서 은근히 미안함과 나 자신에 대한 속상함이 세월에 뒤섞여 마냥 지나가던 차에 와달라고 하니 고마울 뿐이었다. 예쁜 손녀 얼굴이 아른거렸다.
02_아들 집엔 할 일들이 많았으나 손도 못 대게 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아들부부 옆에 작은 인형처럼 예쁜 손녀가 환한 미소와 함께 “할아버지!” 하며 달려와 안겼다. 반갑고 흥분된 마음에 공항을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도착한 아들 집은 60년 넘은 고택이라고 했다. 그래선지 부엌은 18세기 고풍스러운 타일이 붙어있었고 밤엔 천정에서 생쥐들이 요란하게 뛰며 놀고 있었다.
집엔 할 일들이 많았으나 손도 못 대게 했다. 틈틈이 문을 고치고 침대를 조립하고 무화과 나무를 자르다 고작 1미터도 안 되는 사다리가 넘어지면서 도착 5일 만에 너무 쉽게 왼 팔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낸 것이다.
“아니, 하늘에서 떨어져도 낙법 쓰면 멀쩡할 거라며?” 하며 마누라가 눈을 안쓰럽게 흘긴다. “글쎄, 몸이 옛날 몸이 아니네…” 하며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그리곤 초췌해진 내 모습에 집 주변공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공원에는 푸른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간 크고 굵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있다. 하늘을 꽉 채운 나뭇잎과 가지들이 쾌적하고 신선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03_이러니 뿌리가 통째로 뽑혔지…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 모습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때마다 깊은 산속을 걷는 느낌을 주는 행복한 장소였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차분이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재충전 장소이기도 했었다.
언젠가 천둥 번개, 비와 함께 태풍이 심하게 불고 난 다음날 아침, 커다란 나무 하나가 뿌리째 뽑혀 여기저기 가지가 부러진 채 어수선하게 나둥그러져 산책길을 고약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잠시 지나가며 살펴보니 굵은 나무의 안쪽은 텅 비어 있었고 땅속으로 깊숙이 내리 뻗은 뿌리는 없었다. 그저 땅 표면을 따라 넓고 얇게 퍼져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니 뿌리가 통째로 뽑혔지”라고 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사실 내겐 ‘삶의 철학’이 없었다. 굳이 있어야 한다면 ‘가장으로서 가족이 배고프지 않고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돈을 벌어오는 것’이었다.
펜셔너 5년 차인 지금도 일하고 있는 이유이다. 어려서는 이밥과 모정에 허덕이며 살았고 그 후론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살았다. 그러니 ‘직업은 무엇이든 1인자가 되자!’를 목표로 24시간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다.
04_38년 집권한 가장의 책임과 역할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 교양, 덕… 이런 것들은 나에겐 사치였다. 뿌리 깊지 않은 이기적 삶이었다. 그러니 누구든 쉽게 말도 못 걸게 부풀린 몸과 차가운 인상으로 폼만 잡고 고집스럽게 살았다.
결국 IMF 태풍에 맥없이 넘어져 멀쩡한 직장을 버리고 호주 이민까지와 힘들게 살고 있는 지금의 휑한 내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올라온 것이다.
“좀 가만히 계시면 되는 걸… 노인네가 청춘인 줄 아세요?” 한다. 그랬다, 38년 홀로 집권한 가장의 책임과 역할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행복한 숲 속을 구성하는 거대한 나무가 아니고 태풍에 힘없이 넘어져 부러진 나뭇가지와 함께 누군가의 행복한 산책길에 거치적거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두 아들은 이미 독립하여 오히려 부모에게 ‘뭐 해드릴 것 없나?’ 살피고 있었다. 막히면 돌아가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조금 불편하게 살면 되는 것을….
‘한 두 달 푹 좀 쉬었다 일하러 가지 뭐…’ 하고 회사에 병가를 낸 후 쉬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평온하다. 갑자기 찾아온 반가운 손님처럼….
글 / 정귀수 (글벗세움 회원·버스운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