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소하다 생각했던 것, 잘못된 습관 바꾸는 절호의 기회 될 것
오래 전 일이지만 난 아직도 그날 울미가 겪은 일이 내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유아교육을 공부하던 때였다. 방글라데시에서 호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울미라는 여학생이 어느 날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학교에 출석했다. 과제를 제출하려고 교단 앞으로 나간 울미는 선생님께 자기가 감기에 걸렸다고 말했다.
01_“감기에 걸렸다면서 학교에 나타나면 어쩌자는 거야?”
아픈데도 불구하고 수업에 참석한 그녀의 성실한 태도에 응당 칭찬과 위로의 말을 기대했을 것이다. “감기에 걸렸다면서 학교에 나타나면 어쩌자는 거야?” 울미는 목청이 터질 듯이 소리를 지르시는 선생님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어린 시절 내내 나는 소아천식을 앓았고 자연히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결석이 잦았다. 늘 손님처럼 낯설었던 학교생활은 중학생이 된 후 개근상을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꼬박꼬박 치르는 몸살감기에 그날도 몸에서 열이 펄펄 끓었고 나는 고집을 부리며 학교에 갔다. “너 오늘 꼭 올 줄 알았어.” 먼저 와 있던 단짝 경원이가 교실에 들어서는 나를 반기며 한 말이다.
누구에겐 참 별일도 아니겠지만 내게 그 한 마디는 엄청난 고난을 넘어선 사람이 받는 숭고한 상장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는 그랬다. 쿨럭 기침을 하면서도 학교나 직장에 출근하는 것이 칭찬을 들으면 들었지 비난 받을 일은 아니었다.
누구도 콧물을 훌쩍거리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돌린다든지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은 생각도 못 해보았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재채기는 목젖이 떨어지도록 시원스럽게 해야 개운한데 ‘입을 가리고 하라’든가 ‘손수건에 대고 코를 풀라’는 충고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아니꼬움을 넘어서 멀쩡했던 관계가 깨질 수도 있었다.
02_소소한 문화적 습관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은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약속을 취소한다는 것이 왠지 도리가 아니다. 분명 감기를 앓고 있는 목소리인데 ‘다음 날 일어나봐서 몸이 괜찮아지면 만나자’고 연락을 해오는 친구들이 가끔 있다.
이럴 때는 상대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감기에 옮았을 경우 일상에서 받을 타격을 열거해 보임으로 내 쪽에서 먼저 거절의 의사를 분명하게 해준다.
호주에 사는 어떤 분의 손자가 자기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재채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한국에 메르스 사태가 터졌던 2015년의 통계에도 기침 예절을 실천하는 성인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방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은 습관이 되지 않거나 귀찮아서였다.
맨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면 그 후 손으로 잡는 모든 것에 바이러스가 옮겨 붙으니 휴지나 손수건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한다. 휴지나 손수건이 없다면 옷소매 위쪽으로 입을 가리고 침이 튀지 않게 해야겠지만 가정에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아이는 기침 예절이 몸에 밸 때까지 또래 친구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다. 소소한 문화적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03_제발 집에 계세요… 퍼져나가려는 바이러스 꺾는 유일한 길?!
며칠 전 공동카톡에 ‘벨파스트병원’ 의료진들의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이 들어왔다. 의사와 간호사 외에도 호흡기질환 전문가들 한 분 한 분이 우리 모두를 향해 간절하게 당부하는 것은 “제발 집에 계세요!”였다.
확진자는 물론이겠고 건강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기회를 노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려는 바이러스의 도발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울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사실 그녀가 운이 좀 없긴 했다. 그렇게 대놓고 학생을 모욕 주는 선생님은 정말 흔치 않은 경우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울미는 감기에 대해 확연히 다른 태도를 갖게 됐으리라.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19 (COVID-19)는 한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을 거쳐 세계 곳곳으로 그 기세를 몰아가고 있다. 가뭄의 산불처럼 이 흐름이 언제 멈출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힘든 시간은 지구촌 우리 모두에게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그것에 대한 잘못된 습관을 단번에 바꾸어버리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