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

앞마당 화단에 몇 달째 3미터가 넘는 기다란 목을 늘어뜨리며 장하게 피던 용설란꽃이 다 지고, 마른 대만 남아 매달려 있다.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해 꽃을 피우던...

집 개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배움의 연속이었던 나날들 아들이 집을 샀다. 호주 집값 상승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집 장만을 포기하고 렌트로 살아가고 있다는 미디어소식은 더 이상 새로운...

추석 2020

-경에게    작은 오두막에서 기억이 자란다 끓는 연탄불에 물솥을 올리고 외출 나갈 작은 오빠 운동화 두 짝을 솥뚜껑 위에 엎어놨다 따뜻해진 발은 이미 청군이 되어 서울역이나 남산까지 한달음에...

봄… 꽃물 이야기

새 생명을 틔우는 과정은 자연의 조건뿐만이 아닌가 보다 9월의 햇살이 따뜻하다. 대지는 서둘러 씨앗을 틔웠고 바람은 꽃들을 다투어 피워낸다. 튜울립 축제가 열리는 보랄을 가볼까 말까를...

희미하게 살해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단편소설 연재)

아내가 자살했다. 스스로 손목을 그었다. 시신에서 흘러나온 혈액 바다에 그 동안 복용해 오던 ‘침팩스’ 캡슐들 그리고 보드카가 병째로 뒹굴고 있었다. 전선 절단용 칼은 시신...

어머니의 사랑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힘없고 앙상한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우는 신발

- 진학 형에게     하늘은 울 일이 없어 이 땅에 울다 가는 거다 다 울고 오라는 세상 얼굴 내밀며 울지 않으면 엉덩이를 맞는 거야 울러 왔다는 거 잊지 말라고 그래서 피카소도 열심히 그린 우는 여인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신발을 본 적이 있지 하늘에 줄 하나 걸어놓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떠나는 맨발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가지런하고 어여쁜 구두를 보았지 울지 않으면 미치고 만다고 우는 아이들이 모여 평화스러운 골목 팀 스프리트 바람이 한참이던 양평의 들판 선아였던가 2월의 외딴 집 열다섯 소녀의 몸속으로 밀고 들어온 검은 구름 그때 울 수 있었으면 바람은 지나가는 거라고 수근 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쉬쉬거리는 힘없는 아비를 붙들고 울었더라면 그 뜨거운 맨발이 눈발 가득한 들길을 피해 갔을까   태어나는 것은 모두 아프다고 풍진 세상이 안타까워 예수도 그렇게 울었던 것을 얼굴을 내밀며 울지 않는 아이 그래서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거야 신발 하나 가지런히 놓이기까지 세상은 아픈 거니까 어서 울라고 울어야 견디는 거라고     김 오 (시인·시동인 캥거루 회원)  

사랑하는 그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수업을 마치고 친구랑 재잘거리며 대학 캠퍼스를 걸어 나오는데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사진에서 보았던...

희미하게 살해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단편소설 연재)

넌 나한테 죽은 사람이야. 넌 죽었어. 난 차갑게 미소 짓는다. 라이플엔 내 심장보다 뜨거운 블릿이 곧 장착될 것이다. 팔을 뻗어 가방을 확인한다. 라이플 부품이 담긴...

부러진 여행

“좀 가만히 계시면 되는 걸… 노인네가 청춘인 줄 아세요?” "어이쿠!" 하며 나무에서 떨어졌다. "와당탕!" 소리에 놀란 며느리가 사색이 되어 달려 나왔다. 부러졌나? 눈앞이 캄캄했다. 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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