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정인

달이 이상하게 뒤집힌 그 밤* 으슴푸레한 달빛 아래아무도 모를거라쓰개치마로 가린 얼굴호롱불 든 양반골목 어귀에서 만나고 있네 여인은 샐쭉 삐져있고남정네는 무언가로 달래보려는데 달빛도 침침한 삼경두 사람 마음 두...

베이징의 태극권 친구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한동안 닫혀있던 중국의 국경이 열렸지만 태극권을 배우기 위한 비자를 받기까지 반 년의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의 서류가 반려되고 좌절의 시간이 있었지만...

진정한 스토커

아직 침대에서 꼼지락 댈 때어렵고 복잡한 주문을 걸어혼을 빼가던 그 어둑한 발소리로 다가와전등을 떨게 하던 그 길 건너 술집에서 지켜보던그림자 밥풀이 냉장고 안에서 날아다니고연어 참치가 도마 위에...

그 너머엔

정신 없이 달려가 보니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저녁 식사한지가 고작 일주일 전이였는데. 모임이 끝난 후 나날이 이 모임에 가슴 설레며...

딸의 독립

“엄마, 나 캔버라에서 일해봐도 될까?” 졸업을 앞두고 직장을 알아보던 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는 시드니가 아닌 다른 도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딸의 말에 적잖이...

눈 감고 본다

그리움이가슴 들추고 올라오면밀려오는 향수에 뒤척이다가졸음에 실려 고향에 간다사랑하지 못한순간을 보속하며허한 마음 보따리 움켜잡고옛집을 찾는다 물감 풀어놓은꽃밭 안 젊은 엄마빨갛게 익은꽈리 다발 흔들며예쁘다 예쁘다연방연방감탄한다꽃 닮아 웃는...

소나기

갑자기햇빛 자취 감추고양동이로 붓듯 쏟아지는 비왜 저럴까늘 궁금했어나도 모르게가슴 메운 먹구름눈물로 터지고칭칭 감긴듯 한구렁이가뭇없이 사라져살 것 같았어알고 있었나 봐때론까닥 없이 비워져야 된다는 것  이남희 (문학동인캥거루...

고향냄새

푸른 하늘 덜어 담은함석 두레박한 모금 물냄새 쇠맛도 담겨있다 장독대엔 된장 고추장 간장익는 냄새할머니 장맛은 며늘 손끝에도 있고 부뚜막 가운데 걸터앉은무쇠솥엔보리밥 숨 참는 냄새 가득하다 부지깽이 솥뚜껑...

진술서

저는 시를 쓰지 않습니다진술만 할 것입니다제가 쓴 글들은 시가 아닙니다 감정의 상태만 기술하겠습니다제 글을 가슴에 담는 건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시는 당신이 쓰십니다저는 당신의 시를 밤새 읽으며당신의 시로...

시드니 감나무와 포섬: 공존의 철학

어떤 존재가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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