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다큐멘터리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2014년 개봉돼 독립예술영화 전 부문 흥행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영화는 부부의 일상과 이별 과정을 담고 있다.
조그마한 강이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아담한 마을, 76년째 연인인 89세 소녀감성의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장성한 자녀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서로를 의지하며 신혼처럼 살아간다.
이들은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다닌다. 봄에는 노랗고 붉은 예쁜 꽃을 꺾어 서로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할머니를 향해 잔돌을 던져 물을 튕기며 장난을 치고, 가을엔 서로에게 낙엽을 뿌리고, 겨울에는 눈싸움도 한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눈물을 글썽이며 야산에 꼬마를 묻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할아버지 기력은 약해져 간다.
점점 잦아지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를 듣던 할머니는 추적추적 비 내리는 마당을 우두커니 쳐다보면서 마음 속으로 머지않아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고 눈시울을 적신다.
오래지 않아 할아버지는 끙끙대던 신음소리마저 멈추고 조용히 숨을 거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할아버지 봉분을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입던 남아있는 옷가지들을 불태우면서 운다.
태우는 것은 아름답든 즐겁든 슬프든 아프든 세상의 모든 살아가는 것들의 닫음이다. 태우는 것은 흔적을 지우는 거다. 살아있는 자는 그렇게 태워버리면서 남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함께한 기억들을 꽃잎처럼 날려보내는 가슴저린 작별 인사다.
내 어머니가 세상 떠나고 장롱을 열었다. 달랑 치마저고리 두벌이 걸려있었다. 당신 세상 떠나기 수년 전 가난에 찌든 숙모를 불러 당신의 옷가지를 몽땅 싸서 보내고 남아있는 것이었다. 내 어머니의 유품은 태워버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혼자 당신을 정리하고 흔적을 지웠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가볍든 무겁든 바르든 그르든 인생도, 떠나가면 태워지고 잊혀지는 것이다. 서럽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아픔을 지우고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어쩌지 못하는 삶의 굴레다.
한 인간이 한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수십억 인간의 생김새가 모두 다른 만큼 살아가는 모습도 방법도 제각각 이다. 그 살아가는 방법이나 모습에 대한 평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몫이다.
어떤 사람은 오직 자신만 위해서 살아간다.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하든, 자신의 손익만 계산한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은 관심 밖이다.
어떤 사람은 비 맞으며 노래하는 사람 등뒤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며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어떤 사람은 부모 형제 아내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불태운다.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목표이며 전부다. 빵을 훔칠 때도 내가 아닌 가족을 먹이려고 생각한다. 배고픈 장발장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칠 때 자신만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굶주리고 허기진 가족을 위해서였을까.
어떤 사람은 부정과 부패를 일상처럼 살아가는 뻔뻔한 족속들을 향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쓴 소리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머뭇거리지 않고 더 곧은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국가와 사회와 정의를 위해 맨몸으로 탱크 앞에 선다. 나를 버리고, 내가 사랑하는 반려자와 자식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르고 곧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고통을 스스로 짊어진다.
이런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될까. 누가 사람다운 사람인가? 누가 아름다운 사람인가? 누가 사랑 받고 존경 받는 사람인가? 그 평가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와 가치로 남는가? 삶은 끝없이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삶이든 끝내는 태워져야 하는 것이다. 다만 그 태움이 오래 머무는 향기로움 이길 바란다.
둘째 형님이 세상 떠나기 몇 년 전에 내가 쓴 글들을 책으로 내자고 했다. 비용은 당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너의 글이 좋다 안 좋다를 떠나서 책으로 남겨놓으면 자식들에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사양했다.
나는 형님에게 진심을 담아 말씀 드렸다. “제가 쓴 글은 대체로 모가 납니다. 둥글지 않고 각이 서있습니다. 험한 세상을 버텨온 아픔의 통곡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특권과 반칙을 일삼는 자들과, 많이 가진 자가 법이 되고 정의가 되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제 마음속엔 가시나무가 심어져 있는가 봅니다. 변명하자면 제가 쓴 글은 제가 살아온 세상과 삶에 대한 푸념과 무력감일 겁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누구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글이 아닙니다. 이런 글은 어차피 지워지고 잊혀져야 하는 글 나부랭이일 겁니다. 제가 세상 떠나면 모두 지워지고 태워져야 할 것들입니다.”
좀 아픈 말이지만, 비록 대단한 가치는 없지만 내가 쓴 글속에 담겨있는 숨겨진 삶의 의미를 내 자식들도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내가 살아온 고난의 여정을 자식들은 속속들이 받아들이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남겨진다 해도 품어 간직할 이유가 없는 거다.
내게 남아있는 것들은 몸뚱이와, 겉옷 속옷 모두 합쳐 20여벌뿐인 옷가지들과, 끄적거려 놓은 글 나부랭이뿐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몸뚱이를 비롯한 나의 모든 흔적들이 태워지고 지워지길 바란다. 그것이 아름다운 떠남이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