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부터 저는 의사들과 제법 친하게 지냈습니다.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안과, 치과, 신경정신과… 거의 모든 분야의 의사들은 물론, 한의사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명의’라고 알려진 의사들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의사들을 통해 각종 건강정보와 의학정보를 애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기자로서의 중요한 업무였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만물박사가 될 수는 없지만 만물박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명제는 늘 제 곁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형외과 전문의와 피부과 전문의와의 접촉도는 여성지 기자의 성격상 특히 높았습니다. 실제로 그들과의 인터뷰나 직접 취재를 통해서 혹은 의학칼럼을 통해서 전달하는 건강관련 정보들은 애독자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이 됐습니다.
반면, 제 자신과 관련해서는 의사들과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아주 안 아픈 건 아니었지만, 의사를 만나서 진료 혹은 치료를 받아야 할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밤낮 없이 뛰어다니고 허구한날 술을 마셔대도 어디 한 곳 특별히 고장(?)나는 데 없이 천지사방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이처럼 1년 365일 몸을 혹사(?)시켰음에도 어지간해서는 감기나 몸살 같은 것도 한번 안 걸리고 살았습니다. 아무리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강추위에도 내복이나 외투는커녕 늘 청바지에 하늘색 남방셔츠 하나만 달랑 걸치고 다녀 ‘인조인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마흔 다섯 살이 넘어 시드니에 와서도 별반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냥 뭐, 특별히 어디 아픈 데 없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메디케어가 없었던 시절에는 병원에 한번 가면 50불 정도를 내야 하는 게 무서워서 감기기운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온 식구가 5불 50짜리 월남국수집으로 몰려가 월남고추를 엄청 때려(?)넣고 감기약을 대신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과 크고 작은 스트레스는 타고 난 인조인간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시드니에 처음 와서 비자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차례 고생을 하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세븐데이로 투잡을 뛰는 동안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기 시작했던 겁니다.
물론, 5학년이 되고 6학년이 되면서 건강관리를 위해 혈액검사 등 정기검진을 위해 GP를 만나는 건 당연한 일이 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스페셜닥터를 만나는 건 차원이 좀 달랐습니다. 본의 아니게 의사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한때의 인조인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합니다.
함께 여행을 가보면 우리 또래의 혹은 선배지인들의 경우 이런저런 약들을 달고(?) 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거의 예외 없이 한 두 가지 혹은 서너 가지 약들을 챙겨 먹습니다. 거기에 이런 데 저런 데 좋다는 건강식품들은 빼놓을 수 없는 덤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점점 실감하며 사는 요즘, 옛날처럼 남을 위해 의사들을 만나던 시절을 넘어서서 이제는 제 자신을 위해 의사들과 가깝게 지냅니다. 두꺼운 옷도 꺼내 입고 미리미리 감기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 겨울에도 트레이닝 바지에 헐렁한 셔츠 하나만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채 식품점 같은 델 가는 걸 보면 그나마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무병장수 (無病長壽)가 아닌 ‘일병장수 (一病長壽)’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가 유행입니다. 당연히 아무런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한 가지 병이 있어 그걸 신경 써서 잘 관리하다 보면 저절로 건강이 좋아져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우리 나이에 한두 가지 병 갖고라도 비교적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야. 이런 과정 겪을 수 있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해.” 우리 집 초긍정왕 아내의 이 한 마디는 다시금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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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