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조

처음에는 바로 앞에 툭 떨어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어처구니 없이 옆으로 휙 날아가버려 여러 사람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누구든 처음에는 다 그랬었고 그분 또한 그런 과정을 똑같이 겪고 있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쯤이 됐을까, 우리 옆에서 획! 소리를 내며 녹색 찌 하나가 저 멀리 날아가는 게 보였습니다. 그것도 한치의 흔들림이나 삐뚤어짐도 없이 일직선으로….

심심찮게 찌질대던(?) 그분의 찌였습니다. 골프를 칠 때도 워낙 남자들 못지 않은 파워와 실력을 보였다지만 그때부터 그분의 찌는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훨씬 더 멀리, 똑바로 날아가곤 했습니다. 그날 그분은 고등어만한 옐로테일 다섯 마리를 잡았습니다. 처음 하는 낚시치곤 대단한 수확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그 같은 쾌거(?) 뒤에는 훌륭한 스승은(?) 물론, 그분 남편에 의한 ‘과학적인(?) 외조’가 있었습니다. “여보, 내가 다른 사람들 던지는걸 자세히 봤는데… 낚싯대와 머리 사이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간격을 두고 던질 때는 자연스럽게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더라구요.”

제 옆자리에 앉은 그 부부는 낚싯대를 한대만 갖고 와서 부인은 낚시를 하고 남편은 그 옆에서 철저히 보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두분 모두 낚시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었고 낚시 시작 전 제 아내에게서 낚시 채비법과 낚싯대 던지는 법 등을 속성으로(?) 배웠습니다.

사실 본인은 낚시도 안 하면서 옆에 앉아 몇 시간을 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부인이 낚시를 잘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들을 아주 꼼꼼히 챙겨줬습니다. 미끼 끼우는 걸 도와주고 엉킨 낚싯줄을 풀어주고 부인이 낚싯대를 던질 때는 혹여 발이라도 헛디딜세라 그 앞으로 플래시를 비춰주곤 했습니다.

다시 그분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습니다. “여보, 토니씨가 미끼 끼우는 걸 보니까… 정어리 대가리는 잘라내고 몸통 부분만 작게 해서 쓰던데 당신도 꼬리 쪽을 안 쓸 때는 저렇게 한번 해봐요.” 언제 염탐을(?) 했는지 그분은 고급정보를(?) 빼내서 부인에게 전달했습니다.

밤 하늘의 별들도 예쁘고 평일이었던 터라 낚시터도 복잡하지 않아 우리는 그날 아주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들과 두 번째 낚시를 함께 하게 됐습니다. 우리보다 한 시간쯤 먼저 낚시터에 도착한 그 부부는 그날은 낚싯대 한대를 더 준비해 나란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부창부수 (夫唱婦隨)라 했던가, 그날은 남편이 처음 낚시를 시작한 날이 됐는데 남편 또한 낚싯대 던지는 실력이 프로급(?)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도착하기 전 그분들은 큼지막한 테일러 한 마리를 잡아놓고 있었는데 그건 다름아닌 남편의 전리품(?)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후…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낚싯대에 뭔가 묵직한 게 걸려들자 처음 그런 경험을 하는 남편은 허둥대기 시작했습니다. “어? 이거 뭐지? 엄청 무거운데? 어휴! 무거워, 엄청 무거워…”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은빛이 찬란한 커다란 갈치였습니다.

갈치 귀하기가 금보다 더한 요즘, 부인을 여왕 혹은 공주 받들듯이 챙겨주던 남편의 정성에 감복한 용왕님이 낚시 첫날 갈치 선물을 내린 모양입니다. 힘겹게 갈치를 끌어올린 부부는 눈앞의 현실이 믿겨지지 않는 듯 잠시 어리둥절해 있었지만 이내 행복한 하이 파이브를 했습니다.

60을 넘어 70을 바라보는 부부가 서로를 챙겨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이 저들 부부를 닮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 모양이야? 당신은 왜 똑바로 못해?’보다는 ‘당신 지금 잘 하고 있어. 당신 아까보다 많이 나아졌어’가 훨씬 듣기 좋을뿐더러 칭찬은 고래뿐만 아니라 남편과 부인도 춤추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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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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