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천사’와의 1박2일

집 앞에 도착하자 아내만 내리게 하고는 녀석을 태운 채로 얼른 차를 돌렸습니다. 데이케어가 끝나고 뜻밖에(?) 할머니까지 만나 한껏 기분이 좋아졌던 녀석은 이내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을 시켜봐도 일절 대꾸가 없습니다.

그러던 녀석이 차가 다시 돌아 우리 집으로 들어서자 얼굴이 활짝 피면서 괴성까지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엄지 척!’까지 했습니다. “이든아, 좋아? 내릴까?” 저의 물음에 녀석은 싱글벙글 웃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떡끄떡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녀석과의 1박2일… 사실은 2주 전부터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데이케어에 오가면서 우리 집 앞을 지날 때면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녀석이 안쓰러워서 아내와 둘이 ‘언제 한번 문득 데리고 자자’는 얘기를 했던 차였고 지난주 수요일 오후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겁니다.

녀석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신이 났습니다. 온 사방을 뛰어다니며 소리까지 꺅!꺅! 질러댑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뜻밖의 복병을(?) 만난 우리 집 고양이 해삼이는 기겁을 하며 식탁 밑으로 숨어버렸습니다.

녀석은 냉장고 문을 열고 딸기우유며 주스,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고 과자창고(?)를 뒤져서는 지 맘에 드는 것들을 골라 먹기에 바빴습니다.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으음~” 하며 만족을 표시하던 녀석은 아내와 제 입에도 과자를 하나씩 넣어줍니다. 특유의 찡긋찡긋 눈웃음을 연거푸 날리면서….

이어서 지 엄마가 쓰던, 지금은 지 전용놀이공간이 된 방에 들어간 녀석은 할머니가 부활절 선물로 준비해놨던 커다란 경찰차와 헬리콥터 그리고 미니카 시리즈를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 줄 모릅니다. 그때부터 녀석은 밥 먹을 때도 잠 자리에 들 때도 손에서 그것들을 놓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맛있게 구워진 삼겹살과 함께 밥도 한 그릇 뚝딱 다 비웠습니다. 지 할머니 무릎에 앉아 TV도 보고 유튜브도 즐기고… 그야말로 모든 게 지 맘대로이니 녀석의 만족도는 그야말로 300%쯤 됐을 겁니다. 밤 열 시… 녀석을 재우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침대에 누웠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잠이 안 오는지 침대 양쪽에 있는 센서등을 켰다 껐다, 방안 여기저기를 오가며 혼자 뛰어 놀았습니다. 한 손에는 최애(最愛)품이 된 경찰 헬리콥터를 들고서….

아내와 저는 짐짓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렇게 30여분을 혼자 놀던(?) 녀석이 슬그머니 침대 위로 올라와 제 옆에 눕습니다. 바로 누웠다가 거꾸로 누웠다가, 혼자 노래하다가… 지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이불을 들추고는 할머니 얼굴을 빼꼼히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기를 다시 20여분… 녀석이 제 옆에 와서 눕더니 지 윗도리를 당겨서 쪽쪽 빨기 시작합니다. 녀석 특유의, 잠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 녀석은 제 손을 꼭 잡은 채 쌕쌕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녀석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녀석의 작고 앙증맞은 입술에 수없이 많은 뽀뽀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녀석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 한 후에야 저도 눈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새벽 두 시쯤… 녀석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울기 시작합니다. 단 한번도 지 엄마 아빠를 안 찾던 녀석이 갑자기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는 아니었을 것이고 뭔가 나쁜 꿈을 꾼 듯싶습니다.

녀석을 꼭 껴안고 방안을 몇 차례 오가자 녀석은 울음을 그치고 다시 평온을 찾았습니다. 한쪽 손에는 ‘할머니 표’ 경찰 헬리콥터가 들려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 40분,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저를 보고 싱긋 웃습니다. 안 그래도 미소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녀석인데 그날따라 더할 수 없이 상큼했습니다. 녀석에게 아침 밥을 먹이고 데이케어에 데려다 주는 걸로 아기천사와의 꿈 같은 1박2일은 마무리됐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 대로, 녀석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한은 가끔, 아니 종종 아기천사 에이든과의 1박2일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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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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