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40일

40일 동안 아내가 미국과 한국으로 여행을 갔다. 이럴 때 그녀는 항상 냉장실과 냉동고 구석구석을 가득가득 채워 놓고 갔었다. 김치와 깍두기, 파김치와 불고기, 간장게장과 사골국, 얼린 만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만. 다양하고 충분한 준비로 아내 올 때까지 남아 있을 정도였는데…. 물론 은퇴 전 열심히 돈 벌어올 때였다. 이번엔 뭔가 시작부터 쌔 했다. 출발 전 한동안 좀 거시기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맘으로 떠나 선가? 먹을 게 며칠 만에 동이 났다. 갑자기 뭔가 만들어 먹어야 할 상황에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아침이면 아내가 이틀에 한번씩 해주었던 빵을 구워 먹기로 했다. 빵 위에 올릴 샐러드, 계란부침, 팬에 익힌 얇은 토마토 정도는 쉽게 준비해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샐러드 준비를 시작했다. 반 토막 잘려진 양배추를 깨끗하게 씻고 큰 칼로 가늘게 썰기 시작했다. 한번은 두껍게 다음엔 얇게 삐뚤빼뚤 서툴렀다. 어머니와 함께 한 끼 먹을 것, 딱 그만큼만 그럴듯하게 그릇에 담았다. 홍당무 껍질을 벗기고 가늘게 채 썰려고 했는데 굵은 것 가는 것 가릴 것 없이 손 안 다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칼질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국산 마요네즈를 적당히 짜 넣고 젓가락으로 살살 버무려 입 속에 넣어 보니 달착지근하고 고소하며 신선했다. ‘요리는 이런 맛 때문에 하는구나!’ 했다. 만만치 않은 샐러드 준비과정에서 만났던 어색함과 어려움에 대한 보상 느낌도 있었다. 자신감이 슬며시 생겼다. 평소 얻어먹던 만큼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게 괜찮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적당히 두르고 가스쿡탑에 올린 후 불을 켰다. 잠시 후 계란 두 개를 깨서 팬에 올리고 나무주걱으로 노른자를 살짝 두드려 넓적하게 빵 위에 올릴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었다. 토마토 한 개를 6등분으로 얇게 썰어 계란 사이의 공간에 올려 함께 익어가는 상태를 살폈다. 동시에 어제 사온 아보카도 한 개를 반으로 자르고 씨를 뺀 후 티스푼과 함께 작은 그릇에 담았다. 익은 토마토와 계란을 접시에 가지런히 올렸다. 두 개의 우유 컵을 전자렌지에 넣고 50초씩 따끈해지게 돌렸다. 마지막으로 토스터를 꺼내고 어제 구입한 껍질 딱딱한 빵 세 쪽을 꺼내 굽기 시작했다. 어머니 방에 뛰다시피 달려가 “어머니, 식사하세요” 했다. 어머닌 항상 식사 직전에 손을 씻고 매무새를 만진다. 그 시간에 구워진 빵에 준비된 아보카도를 으깨어 얇게 바르고, 준비된 토마토와 계란 그리고 마요네즈 샐러드를 올려 어머니 접시에 올려놓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빵의 절반을 손가락으로 자르는 표시를 한다. 이 행동은 빵의 크기와 관계없이 항상 식사 전 루틴처럼 매일 반복되었다. 아침 입맛이 없는데 아들 때문에 억지로 먹는다는 점을 표하는 것이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순간이었다. 아마, 아내도 그러했으리라.

아내가 떠난 지 7일쯤 되었다. 식사준비에 다소의 틀이 잡히니 이제는 매일 아침 똑같은 음식이 느끼하고 질리기 시작했다. 문제가 심각했다. 요리의 잘잘못이 아닌 다양한 메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냉장고와 냉동고의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얼려 있는 내용물을 확인할 수가 없으니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끼니때마다 뭘 알아야 준비하지, 참 암담한 순간이 반복되었다. 그녀가 오려면 아직 30일 넘게 남았는데… 할 수 없이 최소한 하루 전 메뉴 선정과 재료 준비를 미리 해놓을 생각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그냥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땐 무얼 먹을까를 생각했고 생각나는 대로 최대한 간단한 것을 준비하기로 했다. 점심 후엔 저녁을 그리고 내일을 생각했다. 메뉴 선정에 따른 쇼핑목록을 매 순간 기록하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돼지와 소고기, 배추와 무, 우유와 두부, 토마토와 아보카도, 올리브와 새우젓, 빵과 달걀 등을 구입한 기록들이 좋은 자료가 되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한 불고기, 시금치와 콩나물무침과 국을 만들어 보면서 한식은 마늘과 파, 소금과 간장, 된장과 고추장, 참기름과 설탕 그리고 멸치액젓만 있으면 기본문제는 해결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하루 세 끼 메뉴 선정, 쇼핑, 요리 그리고 가사 일을 하기 위해 평소에 해오던 나만의 일상이 전면 중단됐다는 점이다. 은퇴한 내 노후 삶의 계획과 진행에 심각한 지장이 발생한 것이다. 그동안 하루 세 번 설거지를 도맡아 했고, 매주 집안 대청소를 했고, 한두 달에 한번 가드닝 하면서 집안일은 나 혼자 다 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내에게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으리라. 집안에서의 그녀 역할이 지대했음을 실감한 40 일이었다. 역시 당해봐야 깨닫는 존재임을 이번에 또 확인한 셈이다. 갑자기 아내가 집에 오기 전에 뭔가 깜짝 선물할 생각을 했다. 그래야 중단된 내 은퇴 후 삶의 진행에 차질 없이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린 2-3년 전부터 약간씩 기울어지는 집의 옹벽 (Retaining wall)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지대가 높은 옆집 80대 노인의 책임회피를 변호사를 통해 해결하는 것보다 그 비용의 일부 공사비면 해결될 일이었다. 문제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열 손가락의 시멘트 화상과 열흘 이상 치료와 몸살로 몸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공사가 점점 더 커졌고 아내가 귀가한 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어야 했다. 그래도 귀가한 그녀의 친절하고 부드러워진 분위기를 대면하면서 충분한 효과를 보고 있으니 깜짝 선물 준비는 성공적인 셈이 되었다. 아내가 온 다음 날부터 나는 조금씩 내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40일 동안 못했던 내 은퇴생활의 보람과 즐거움을 되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 세 끼, 그녀는 이걸 40년 넘게 해왔구나…’

 

 

글 / 정귀수

 

 

 

Previous article타운게시판 (2024년 3월 28일)
Next article시의 한 줄이 부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