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밀리?!

그야말로 기우였습니다. 아니, 180도 전혀 다른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들은 물론, 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눈만 마주쳐도 대성통곡을 하던 녀석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 전부터는 녀석이 우리한테 안겨 눈웃음을 치기도 하고 지 엄마와 살짝 떨어져 있어도 엄마를 찾지 않고 잘 논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3주 동안 매일 몇 시간을 지 엄마와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지… 적지 않은 걱정을 하면서 우리의 프로젝트(?)는 시작됐습니다. 그랬는데 이 녀석이 지 엄마가 지를 우리 집에 데려다 놓고 나가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 오빠와 함께 노는 데만 열중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지 엄마가 돌아와도 무덤덤하던 녀석은 오히려 지네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타면 아쉬운 표정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전에 지 오빠가 하던 걸 그대로 이어받아(?) 하고 있는 겁니다.

녀석은 여자아이라서 그런지 눈웃음이 지 오빠보다 훨씬 더 심하고 흥도 아주 넘쳐납니다. TV에서 노래가 나오거나 장난감에서 멜로디가 들리면 머리를 흔들흔들 엉덩이를 들썩들썩 신나게 춤을 춥니다. 게다가 녀석은 그냥 몸만 흔드는 게 아니라 제법 ‘웨이브’까지 합니다. 우리는 그런 녀석에게 ‘흥밀리’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녀석은 가끔씩 우리를 향해 고개를 거의 90도로 옆으로 꺾으며 마치 ‘까꿍!’ 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웃음을 발사합니다. “에밀리, 뽀뽀!” 하면 혀를 쭉 내밀고 달려들어 우리 입술을 침 범벅으로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물론, 지가 내키지 않을 때는 예의 그 눈웃음과 함께 고개를 옆으로 살랑살랑 흔듭니다.

이제 3주 후면 첫돌을 맞는 에밀리는 날로 그 귀여움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활동력이 좋아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다니고 먹는 것도 엄청 밝힙니다. 지 오빠 에이든이 과자며 음료수를 먹을 때면 손을 쭉 뻗고 “맘마! 맘마!”를 외칩니다. 가끔씩은 쏜살같이 달려가 지 오빠가 먹던 걸 입에 넣다가 제지 당하기도 합니다.

이제 38개월째인 에이든은 제법 오빠다운 의젓한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아직 여기저기를 천방지축 쫓아다니며 크고 작은 말썽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리고 가끔은 지 동생이 우리한테 안겨 있는 게 샘이 나는지 지도 슬그머니 와서 엉덩이를 들이밀기도 합니다.

그렇게 두 녀석과 3주를 지냈습니다. 어른이고 아이이고 자주 살을 맞대며 살아야 정이 드는 법… 그 동안 녀석들과 정이 듬뿍 들었습니다. 물론, 두 녀석을 챙기다 보면 은근히 힘이 드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녀석들과의 시간은 그야말로 행복이었습니다.

코리아타운 스타프 한 명이 한국에 중요한 일이 있어 3주 동안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팔방미인인 딸아이가 구원투수로 등판해 훌륭하게 채웠습니다. 에밀리를 낳고 1년 동안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음에도 딸아이는 유감없이 실력발휘를 했습니다. 물론, 다른 코리아타운 스타프들의 유기적인 어시스트도 좋은 콜라보를 이뤘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이 녀석들 봐주고 회사를 선영이한테 맡길까?” 아내와 함께 이런 얘기도 나눴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엄청 좋아하는 녀석들이지만 조금은 더 엄마와 뒹굴며 지낸 후에 우리의 은퇴를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3주 동안의 꿈같은 동거가 끝난 이제부터는 녀석들을 또 뜸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에밀리, 춤! 춤!” 하면 멋진 웨이브와 함께 신나게 몸을 흔들던 모습과 “에밀리! 뽀뽀!”하면 혀를 쭉 내밀고 달려들어 우리 입에 침을 잔뜩 묻혀놓던 에밀리의 모습이 문득문득 그리워질 겁니다.

그렇게 한동안을 함께 지냈다고 다시 할아버지 껌딱지가 된 에이든이 저에게는 여전히 최고입니다. 어쩌면 녀석은 오늘 아침에도 차일드 케어 가는 길에 “할아버지한테 가자!”고 지 엄마를 졸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82강
Next article‘~에 관한’ 의미하는 ‘~に関する’ 표현 배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