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後記

교도소에 들어와 2주일이 지났다. 경찰서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된 날 검사실 서기의 신문을 받은 이후 담당검사는 나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그건 경찰 조서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가 옮을까 봐 이불을 덥지 않고 며칠을 담요로 버텼었지만 이들은 이미 내 몸뚱이를 훑고 다녔다. 몸뚱이는 두려운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마음도 징역살이 준비하자고 다지면서도 옳음과 곧음에 두었던 내 삶의 의미는 모순과 참담함과 분노 때문에 힘들었다.

때때로 감방 밖에서 활동하는 기결수들의 함성 같은 소리들이 희미하게 들려오곤 했다. 그 아득한 소리들은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환청으로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럴 때면 철창으로 보이는 작은 하늘을 우러르면서 소리 없이 울었다.

공소제기마감 3일전이었다. 기상나팔이 울리고 나자 교도관이 감방 앞에서 말했다. “5265번 출두!” 담당검사가 부른다는 것이었다. 명환이 내 등을 툭 쳤다. “낌새가 좋다!”

검찰청 대기실로 들어섰다. 먼저 와있던 죄수가 솜씨 자랑하듯 나무젓가락으로 내가 차고 있던 꽉 조이던 수갑을 풀어주면서 생색을 냈다. “손등에 걸치고 있어. 검사실 갈 때 다시 채워 주께. 안 쪼이게!”

검사실로 끌려가자 함께 잡혀 들어갔던 친구가 있었다. 경찰서에서 헤어진 후 처음 만남이었다. 친구와 나는 포승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말없이 서로 쳐다 만 봤다.

검찰로 송치된 첫날 나를 신문했던 서기가 다시 신문을 시작했다. 그때처럼 담당검사는 의자를 돌려 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데 서기는 신문이 아닌 취조를 했다. 부드러운 어투로 재조사를 시작했다. 나는 의아했다. 그런데 더 의아한 것은 서기는 자기가 묻고 자기가 대답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사내들이 여자들을 여관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지? 그러자 여자들이 지나가는 너희들에게 도와달라고 한 거야. 그래서 너가 사내들에게 놔주라고 하자 상관하지 말고 꺼지라면서 네 얼굴을 쳤지? 싸움이 시작 됐어. 시계는 길에 있던 것이 눈에 띄어 주웠다 이거지?”

나는 멍한 표정으로 서기를 쳐다보면서 고개만 끄덕이다가 서기가 재차 물으면 “예, 예, 그렇습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재조사는 빠르고 간단하게 끝났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분명히 뭔가 다른 분위기였다.

취조를 끝내고 일어서는데 창 밖을 응시하고 있던 담당검사가 친구 이름을 부르면서 꾸짖듯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이인호! 시계는 네 주머니에서 나왔다. 시계가 발이 달려서 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겠나? 빼앗았든 주웠든 시계는 네 손으로 네가 집어서 네 주머니에 넣은 거다!” 담당검사의 표정은 싸늘했다.

공소제기 마지막 날 밤이 됐다. 풀려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접고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발걸음 소리가 감방 앞에서 멈췄다. “5265번 나와!” 나는 교도관의 엄포 때문에 감방동료들과 악수도 못하고 감방을 나왔다. 미안했다.

교도관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섰다. 교도관이 내 세상의 옷이 든 바구니를 내어주면서 죄수복을 벗고 갈아입으라 했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자 교도관의 말투가 달라졌다. “기소유옙니다. 고생했습니다.”

나는 공소제기마감 1시간여를 앞둔 늦은 밤에 풀려났다. 교도소 문밖에 둘째 형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붉은 불빛들과 가슴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이 황홀했다.

어머니는 이가 숨어있는 내 옷을 벗겨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고 삶았다. 그리고 바가지에 따뜻한 물을 퍼 담아 아무런 말없이 내 몸뚱이에 천천히 수 차례 부어주었다. 내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그랬다. 그렇게 나는 미움의 세상에서 사랑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도 담당검사가 ‘기소유예’를 결정한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다만, 추운 새벽 날마다 담당검사 집 대문 앞에서 울먹이며 서있는 내 둘째 형님의 모습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두 살때 아버지를 잃은 나를 아버지를 대신해 당신의 지게 위에 태우고 꾸불꾸불 가파른 세월을 오르면서 내 둘째 형님은 늘 혼자 그랬을 거다. “무겁지 않아, 내 동생이니까!”

1971년 1월 27일 설날 한겨울 밤부터 한달 여 동안 내가 잠시 스며들었던 세상, 나에게는 수년처럼 긴 세상이었다. 그 세상 사람들의 눈빛 표정 몸짓 말투가 반백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나는 그 속에서 사랑과 관용과 포용과 나눔과 올곧음을 새겼다. 그리고, 사회변혁을 절감했다.

그들은 대다수가 미움과 증오를 품고 사는 빈한한 밑바닥 인생이었고 힘없는 약자였다. 그들은 세상을 “권력자 패거리들만 잘사는 불법의 도가니”라고 빈정댔다. 아프지만, 그런 사회적 현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들을 사회의 암 덩어리로만 취급하는 권력자들은 진실로 그들 앞에 떳떳할까?

권력 과시를 위해 마녀사냥을 하고, 먼지까지 털어 한 인간을, 일가족을 발가벗겨 도륙하는 조폭 두목 같은 알파메일이 헤집고 다니는 작금의 세상이 나는 진저리 쳐진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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