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브 사랑해!”

이 세상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긴 하겠지만 녀석들과 함께 있으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계속 놀아달라, 안아달라 하면 저도 모르게 “어이구” 소리가 날 때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그러는 녀석들이 한없이 예쁘기만 합니다.

이달 들어 녀석들 만나는 복이 터져서(?) 2주 연속 몇 시간씩을 녀석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은 설날이라서 우리 일곱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가졌고, 그 전주 금요일은 또 제 생일이라서 그런 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버지, 화이브 (Five) 사랑해!” 고사리 같은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 보이며 에밀리가 한껏 애정을 표시합니다. 자그마치 별이 다섯 개… 손녀에게서 5성급 사랑을 받는 저는 분명 행복한 할아버지입니다. “고마워, 할배도 뽐이 화이브 사랑해.” 저의 답례(?)에 에밀리는 두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커다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아래 위로 힘껏 끄떡끄떡합니다.

요즘 들어 에밀리는 저나 지 할머니한테 안기는 걸 부쩍 좋아합니다. 그리고는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우리의 젊은 시절, 지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보는 걸 즐겨 합니다. “하버지 할머니 왜 말 타고 있어?” 결혼 10주년 제주여행에서의 아내와 제 모습이 신기한지 자주 물어봅니다. 지 엄마와 삼촌이 지들 만할 때의 사진은 아무리 봐도 신기한 모양이고 풍성한 머리카락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30대의 제 사진은 볼 때마다 “하버지 아니야”라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에밀리도 이제는 제법 많이(?) 커서 지 오빠와 함께 이것저것들을 꺼내 들고 여기저기를 쫓아다니며 잘 놉니다. 가끔씩은 우리에게 와서 “하버지, 나랑 같이 놀자” 합니다. “어, 할배 이거 마저 먹고 놀아줄 게” 하면 다시 거실로 달려가 지들끼리 재미있게 놀곤 하는 녀석입니다. 행여 넘어지면 어쩌나 싶어 뒤를 좇아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아직은 이런저런 말썽을(?) 많이 부릴 나이인데도 두 녀석 모두 착하고 얌전합니다. 지 할머니가 워낙 꾸미기를 좋아해 크고 작은 장식품들이 집안 여기저기나 정원 곳곳에 많은 데도 그것에 손대는 일이 없습니다. 어릴 적 지 엄마와 삼촌이 그러더니 그 피가 고스란히 이어진 모양입니다.

이 달 초 우리 동네 초등학교 킨디에 입학한 에이든은 “몇 밤만 자면 큰 학교에 들어간다”며 한껏 자랑을 하곤 했는데 빨간 모자를 쓰고 새로운 곳에서도 제법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두 살 반 오빠’라고 에밀리에게 오빠 노릇을 하는 걸 보면 기특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에이든 에밀리 나이였던 시절,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칼질을 했던 추억과 엄마 아빠를 따라 함께 갔던 동네 포장마차에서 빼어난 노래실력을 과시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딸아이의 모습 등 기억의 편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위에 에이든, 에밀리 두 천사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제 팔뚝만 했던, 그래서 안아 올리기조차도 조심스러웠던 두 녀석이 어느새 훌쩍 커서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몸을 부딪치며 깔깔대는 나이가 됐습니다. 우리 집에 오기로 돼 있는 날이면 몇 시간 전부터 얼른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자며 외출복을 입혀달라고 조른다는 녀석들입니다.

2주 전 제 생일 때는 두 녀석이 “…사랑하는 하버지의 생일 축하합니다.” 목청을 높여 생일축하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배려심 많은 에이든이 동영상을 찍고 있는 저를 향해 얼른 와서 촛불을 끄라며 손짓을 했습니다. “어, 훈이가 봄이랑 둘이서 꺼”라는 제 얘기에 몸을 돌리는 순간 동작 빠른 에밀리가 얼른 촛불을 껐습니다. 황당해 하는 에이든을 위해 우리는 웃음과 함께 다시 한번 촛불을 켜고 녀석에게도 기회를 줬습니다.

예순다섯이라는 징그러운 나이가 되고 머리카락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새록새록 쌓여가는 두 녀석과의 사랑의 높이가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복지수도 그만큼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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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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