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

한쪽에서는 홀시어머니에 외아들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쪽에서는 엄마가 계모라는 이유로 서로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던 차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어머니가 용하다고 소문난 곳을 소개받아 궁합을 봤는데 그게 결정타(?)가 됐습니다. “이 결혼, 절대 하면 안돼. 만일 결혼을 하면 여자가 서른 살 되는 해에 남자가 죽어.”

안 그래도 썩 내키지 않던 결혼인데 이런 끔찍한 얘기가 나오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가 돼버렸습니다. 하긴 애지중지 키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는다는데 괘념치 않을 부모는 없을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우리가 직접 물어보겠다”며 아내와 둘이서 열 군데 가까운 곳을 찾아 다니며 궁합이란 걸 봤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처럼 살벌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오직 단 한군데, 우리 어머니가 찾아갔던 집에서만 그런 점괘를 내놨던 겁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궁합이 좋다’ 혹은 ‘둘이 잘 산다’는 곳들의 이야기는 전부 무시하고 오직 한 곳의 ‘죽는다’는 이야기에만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마음 여리고 착한 아내는 저를 만나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결국 물러설 수 없는 한바탕의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이 다음에 우리 아이들 결혼할 때는 절대 궁합 같은 거 안 본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한 우리는 이제 2년 후면 결혼 40주년이 됩니다. 함께 살아오면서 나쁜 짓 안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느니 우리가 조금 손해 보고 산다는 원칙을 고수해온 아내와 저는 그래서 하루하루가 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먹고 싶은 것 있을 때 돈 걱정 안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 행복의 기준입니다. 그렇다고 한 끼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음식을 탐하는 것도 아닌데 요즘엔 그것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계속되는 불경기에 코로나19가 몰고 온 여파 때문입니다.

명품 백 하나 사본 적 없는 찌질한 아내는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자 스스로 ‘짠순이(?)작전’에 돌입했습니다. 부득이한 외식 외에는 음식도 만들어서 먹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쓰지 않는 것… 아마도 아내는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는 그 작전을 계속할 모양입니다. 그렇게 알아서 제게 힘이 돼주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더 큽니다.

솔직히,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옛날이 훨씬 더했습니다. 가족보다는 일과 회사에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았던 시절은 고스란히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남습니다. 맨땅에 헤딩 식 호주 이민 초기시절, 2년 동안 세븐 데이로 울워스 청소를 하게 했던 것과 매사에 좀 약게, 남들한테 못 됐다는 소리를 들으며 내 이익을 추구했다면 지금보다는 많이 풍요로웠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도 또 다른 미안함입니다.

최근 들어 생긴 크고 작은 스트레스, 그것도 모두 남들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털어내느라 우리는 한동안 집 가꾸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Bunnings Warehouse를 열댓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최소한의 자재들을 구입해 오롯이 우리의 힘으로만 앞마당과 뒷마당을 훌륭하게(?)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여기저기 삐뚤빼뚤한 부분들도 있지만 ‘아마추어 치고는 잘했다’고 서로를 격려해줍니다.

우리의 서른여덟 번째 결혼기념일인 다음 주 목요일, 어떤 일로 아내를 웃게 해줘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일로는 인상도 쓰지 않고 화도 안내는 고마운 아내와 함께 여행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며 늘 밝게 웃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데 말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우리 시드니산사랑 멤버들과 함께 웨딩케익 록을 거쳐 말리비치까지 트레킹을 했습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모습이 너무너무 예뻐 열두 명이 폼을 잡고 서서는 지나가는 호주인 중년남성에게 셔터를 부탁했습니다. “원, 투, 쓰리… 쎅쓰!” 짓궂은 그 남자의 황당한(?) 카운트에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빵! 터졌습니다. 우리의 삶 하루하루가 이렇게 별것 아니지만 즐거운 것으로 가득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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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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