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도착하자 생긴 변화

요즘 잘 나가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옆구리에서 기죽지 않고 건사하고 있는 병점 (餠店)이 내 둥지이다. 과거 이 지역은 떡 (餠) 가게 (店)가 많아 일명 떡전거리였다고 한다. 수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서도 머리 둘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정초 무렵인데도 겨울 냄새가 사람을 찌를 듯이 달려들지도 않고 넓게 펴져 아른한 것은 아마 일주일 전 매서운 추위가 한반도 전역에서 질펀하게 분탕질을 하고 간 후라 그럴 것이다. 겨울도 매일 달라지는 온도와 습도 그리고 미세먼지의 농도에 따라 그 질감과 냄새가 다르다. 유독 후각이 남다른 아내는 인천국제공항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그리운 부모와 동생들 냄새를 맡는다.

활짝 열린 그녀의 감각세포가 내 눈에 들어온다. 덩달아 냉기를 머금은 겨울 질감이 내게도 더욱 포근히 다가온다. 징글맞게도 무더운 호주 날씨를 막 벗어난 안도감?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아내의 밝은 표정을 보니 카톨릭 교황처럼 공항 땅에 키스 하고 싶다.

스트레스 없는 아내의 생활이 우리의 공동목표가 된 지 수개월째이다. 덩달아 아내의 고혈압이 내 고혈압이 된지도 몇 개월 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연민이 우리 부부 사이에 점차 자리를 잡아 간다. 이십대의 뜨거운 열정 대신. 장거리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폐활량이 큰 연민이 제격이다. 불같은 사랑은 단거리에 적합할 뿐이다. 결혼의 모터를 시동시키는 것은 사랑이지만 모터가 고장 없이 계속 돌게 하는 것은 연민일 것이다.

고협압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스트레스, 가족력 그리고 음식 등 다양하다. 호주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아내는 매일 사투를 벌여왔다. 언어가 딸리거나 실력이 모자라서도, 미모가 받쳐주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혈기왕성한 호주 십대들이 싸질러대는 행동과 말들이 주범이었다.

그들은 호주의 광활한 자연환경처럼 거칠게 도출한다. 학구적인 분위기를 공교육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쟁할 필요가 없는 문화에서 입신양명이나 청출어람은 간고등어김치찜처럼 그들에게는 생뚱맞다. 짧은 그들의 역사 지층은 단순명료하기만 하다. 인생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 또한 단세포적이다. 개망나니들이라고 쥐어 팰 수도 없다. 기껏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일러바치지만 부모 또한 초록은 동색이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아내는 피곤에 절여 한숨 붙여야 몸이 기능을 한다.

장기 휴가로 한국에 들어와 직장에서 벗어나자 아내의 혈압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전율했다. 고협압의 원인을 제거하면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의학이론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더불어 내 상황도 변화가 생긴다. 일단 똥이 편안해졌다.

섬유질이 그득그득한 음식을 먹으니 아침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할 필요가 없다. 우선 밥이 찰져 힘이 있다. 야채와 생선이 창자 속에서 균들과 상호 조화를 일으켜 소화가 말끔히 되어 나오는 똥도 힘이 있다. 급하지 않으며 매끈하고 리듬을 탄다. 소리도 없다. 키도 훤칠하고 냄새도 거의 없다.

자연식품과 다소 거리가 있는 호주에서는 항문의 괄약근이 통제력을 쉽게 잃고 맘대로 열린다. 그래서 급하다. 매일 아침 학교 체육관에 출근도장을 찍는 나는 운동 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주위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를 듣곤 한다. 간밤에 먹은 그들의 식단이 눈에 선하다. 보통 똥이 겁먹은 양 비실비실 기어 나오고 모양새가 영 아니다.

굵기는 연필토막 같고 자주 끊어진다. 찰지지도 않으니 연속성도 없어 바나나 모양이 만들어질 리 만무하다. 악취 또한 극악무도하다. 장에 있는 균들과 매번 맞짱을 뜨니 먹이들이 충분히 삭아질 리가 없어서 냄새가 오도방정이다. 꼴값에 방향제는 꼭 챙긴다. 사실 양질의 한국 똥을 박정희 정부 시절에 가발과 함께 수출종목으로 선정을 했어야 했다. 하긴 지금도 늦지 않았다. 모발이식을 하듯이 현대의학에서는 좋은 똥도 이식을 하는 시대니까 고려해 볼만한 사안이다.

아내의 마음바닥은 두껍고 넓다. 별로 부산을 떨지 않는다. 견딤과 참음의 결혼생활 속에서 그녀는 항상 내 학문적 영달을 순례자와 같은 표정으로 응원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아내의 건강과 내 은퇴에는 맥이 닿아 있다. 문제는 내가 은퇴를 할 용의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연구에서 얻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논문을 쓰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학생들 연구와 논문 지도를 할라치면 없던 힘도 솟는다. 현재 하고 있는 암 연구에 누가 문의를 해오면 쉼 없이 얘기를 한다.

이러니 은퇴 후 삶을 조언하고 충고하는 유튜브를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말짱 헛일이다. 아내는 혈육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은퇴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자연의 순리로 맡기기에는 그녀의 현실이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나의 갑갑증이 환하게 웃는 아내의 표정에 금세 무기력해지는 요즈음이다.

 

 

박석천 교수의 '따로 또 같이' 여행기 ① 뉴질랜드 북섬, 그 북쪽의 끝을 가다!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박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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