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얼마 전, 한 페친의 글에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글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그 뜻’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어 타산지석의 의미로 공유해봅니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기술자와 인부들을 모아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결혼한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남편이 만리장성 부역에 징용을 당했습니다. 부역장에 한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신혼부부는 생이별을 하게 됐고 아이도 없는 터라 아내는 외딴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지나던 나그네가 “길은 먼데 날은 저물었고 근처에 인가라고는 이 집밖에 없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주십시오”라고 정중히 부탁을 하는지라 거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가 말을 걸었습니다. “보아하니 이 외딴집에 혼자 살고 있는 듯한데 무슨 사연이 있나요?” 여인은 숨길 것도 없고 해서 남편이 부역을 가게 된 그 동안의 사정을 말해줬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사내가 노골적으로 수작을 걸어왔고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여인과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살다 죽는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소? 돌아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 정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우리는 아직 젊고 당신의 평생을 책임질 테니 나와 함께 멀리 도망가 행복하게 삽시다.” 사내는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깊은 밤 외딴집에서 여인 혼자 저항한다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인은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뒤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부부간의 정의가 있는데 부역장에 가서 언제 올지 모르는 남편이 어려움에 처했다 해서 그냥 당신을 따라 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 드릴 테니 날이 밝는 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주시고 증표로 글 한 장만 받아 오십시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를 마련해주는 심정으로 옷이라도 한 벌 지어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 해도 마음이 좀 홀가분해질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제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평생 당신을 의지하고 살 것입니다. 그 약속을 먼저 해주신다면 당신 뜻대로 하겠습니다.”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사내는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 욕정을 채운 뒤 골아 떨어졌습니다. 아침이 됐고 사내는 저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할 수 있다는 황홀감에 빠져 길을 재촉했습니다.

부역장에 도착한 사내는 감독관에게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감독관은 “옷을 갈아 입히려면 공사장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한 사람이 작업장을 나오면 그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옷을 갈아 입을 동안 잠시 교대를 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남편을 만난 사내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편지 한 장 써서 돌아오시오”라고 한 뒤 작업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이 옷을 갈아 입으려고 보자기를 펼치자 옷 속에서 편지가 떨어졌습니다. “당신의 아내 해옥입니다. 당신을 공사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남자와 하룻밤 같이 자게 된 것을 두고 평생 허물로 삼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시면 이 옷을 갈아 입는 즉시 제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시고 혹시라도 그럴 마음이 없거나 허물을 탓하려거든 그 남자와 교대해서 공사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십시오.”

남편은 옷을 갈아입고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와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리장성 공사현장에 언젠가부터 실성한 사람이 보였답니다. 혼자 뭐라 중얼거리면서 큰 돌들을 옮기곤 했는데 옆에서 들어본 사람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고 합니다. “하룻밤을 자고 만리장성을 쌓는구나.” 정확히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가 아니라 ‘하룻밤을 자고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이 말의 원 뜻은 우리가 알고 있던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라 ‘과욕을 경계하라’는 뜻이었던 겁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만둣국
Next article뉴질랜드 북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