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스마니아, 북서쪽을 훑다!

전통과 여유가 공존하는 곳… 가까운 미래에 바라보는 시각 달라질 수도

챨스스터트대 박석천 교수가 연말연시 휴가기간 동안 부인과 함께 캠퍼밴 (campervan)을 직접 몰고 타스마니아 9박 10일 여행을 다녀왔다. 타스마니아 북서쪽 곳곳의 각 여행지를 돌면서 느꼈던 생생한 느낌과 함께 훗날 그곳을 찾을 사람들을 위해 상세한 캠핑정보까지 곁들였다. 코리아타운 애독자 여러분의 간접여행 효과를 기대하며 박석천 교수의 타스마니아 여행기를 공유한다. <편집자 주>

 

 

Day 1

 

01_벅찬 감흥 안은 2년만의 비행

타스마니아 (Tasmania) 주정부가 요구하는 서류들은 의외로 간단했다. 코로나19 백신 1, 2차 접종완료, 도착 전 72시간 이내의 진단검사 음성판정 그리고 여행허가증. 햇수로 2년만의 비행 (飛行)은 벅찬 감흥이었다. 호바트 (Hobart) 행 비행기도 앞머리를 곧추세우고 날갯죽지 양쪽에 불끈불끈 힘을 주고 기세 좋게 날았고 공항에서의 도착절차도 순조로웠다.

호바트 외곽인 로세타 (Rosetta)에 살고 있는 제니퍼 (Jennifer) 집에 들렀다. 제니퍼는 이번에 학사학위를 끝내면서 나에게 논문지도를 받은 60대 늦깎이 학생이면서 환자를 돌보는 자연요법치료사 (naturopath)이다.

동네와 집들이 새것 냄새가 난다. 언덕 위에 있는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아래를 보니 아주 가까이에 모나 (MONA: Museum of Old and New Art)가 턱 하니 앉아 있다. 통상 관광객들은 호바트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이 박물관을 방문한다는데 제니퍼 집에서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지척의 거리였다.

발아래 펼쳐지는 전경이 영락없이 화첩 속의 그림이다. 모나의 주인은 대학시절 전공한 수학과 컴퓨터 지식을 바탕으로 경마와 스포츠에 관련된 도박시스템을 개발하여 부를 축척한 사람인데 자신이 성장기를 보낸 로세타 지역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비로 지은 박물관이 이제는 타스마니아 유명 관광명소가 되었단다.

제니퍼 부부를 만나니 할 얘기가 많았지만 갈 길이 먼 여행을 위해 아쉬운 작별을 하고 스트레트고던 (Strathgordon)으로 향한다. 첩첩산중이었던 이곳은 50년대까지는 길이 없었다. 수력발전을 위한 대규모 댐 건설이 60년대에 끝나고 70년대부터 전력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02_캠퍼밴 앞 바퀴 쪽에서 타는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원래 있던 작은 호수들의 덩치는 인위적인 댐으로 인해 몇 배 커지게 되었는데 환경주의자들은 아직도 이것이 못마땅하다고 한다. 그나마 좁아터진 길이 지형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꼬불꼬불까지 하니 2시간이면 족히 갈 수 있는 여정이 더디기만 하였다.

바람을 동반한 비까지 내리니 조급해진 마음에 저속 기어를 무시하고 캠퍼밴의 브레이크를 수도 없이 밟아 앞 바퀴 쪽에서 타는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시하고, 지도상에도 더 이상 길이 없는 협소하고 깎아지른 계곡에 자리한 고든댐 (Gordon Dam)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관광객들로 북적일 댐이 적막하기만 했다. 아내와 내가 유일한 관광객이다. 아찔한 절벽에서 놀던 새도 사람을 반긴다. 댐의 등허리를 타고 밧줄을 이용해 내려가는 앱세일링 (abseiling)도 개점휴업 (開店休業).

까마득한 댐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의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친 것은 내가 나이를 먹고 있음이랴? 딴 세상 같은 오지 마을인 스트레트고던에 최소한 기본시설은 기대했었다. 아뿔싸… 이건 마을도 아니었다. 꽤 큰 규모의 숙박시설 단지가 전부였다.

안에는 셀프 주유 펌프가 두 개 있는데 코로나19로 영업을 하지 않아 주유도 할 수가 없었다. 난감한 상황에서도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2000년 수령 (樹齡)의 휴언 나무 (huon pine tree)를 바라보면서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았다.

 

03_저녁 준비 하려는데 가스 스토브가 켜지지 않아

거리를 계산해보니 온 길을 되돌아가 주유를 하기에는 위험했다. 할 수 없이 5분 거리의 호수 바로 옆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1박을 하려고 했지만 열악한 시설에 그만 포기하려는데 유일하게 주차하여 저녁을 준비 중인 젊은 부부와 마주쳤다.

우리의 사정을 듣고 선뜻 전화를 해준다. 단지 안에 있는 직원과 아는 사이라고 한다. 다시 단지 안으로 가서 무사히 주유를 할 수 있었다. 연료를 채우니 배부른 기분으로 되돌아 나오면서 단지 내에서 얻어들은 특이한 이름의 캠핑장 (Left of Field)에 도착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입구에 차를 주차한 채 걸어서 사무실로 들어가니 주인 여자가 연신 사과를 한다. 캠핑장을 같이 운영하던 남편이 오늘 갑자기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한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듯 보였다. 드디어 빈터에 차를 주차하고 저녁 준비를 하려는데 이번에는 가스 스토브가 켜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옆자리에 장기 캠핑 중인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자 할아버지는 자신의 버너를 빌려준다.

잠자리를 만들려고 하니 나무 판 하나가 모자라 다시 할아버지와 캠핑카를 전부 뒤져 운전석 바로 뒤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 잠자리를 만들었다. 시행착오의 연속인 첫날이었다.

캠핑장: Left of Field, Camping Gardens, 2440 Gordon River Rd. National Park TAS 7140 (3.5 stars, 화장실 깨끗함, 야외 샤워)

 

 

Day 2

 

04_타지 여행할 때는 현지인의 말 흘려 들으면 안돼

일어나 보니 캠핑장 바로 옆이 필드산 국립공원 (Mt Field National Park) 입구였다. 여러 폭포로 이어지는 트랙들이 있어 하루 일정으로 좋은 곳이지만 유혹을 뿌리친다. 목적지인 퀸스타운 (Queenstown)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더 월 (The Wall)을 들리라는 캠핑장 주인의 말에 구미가 당겼기 때문이었다.

타지를 여행할 때는 현지인의 말을 흘려 들으면 안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예약을 하지 않고 갔어도 입장할 수 있었던 것은 혜택이었다. 휴언 나무로 된 거대한 일자 벽이 전시장 한 가운데 놓여 있고 벽 한쪽에는 타스마니아 특유의 동물들이, 다른 한쪽 벽에는 19세기 타스마니아에서 삶을 꾸려간 선구자들의 고단한 일상들이 새겨져 있었다.

조각 (彫刻)은 깎아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예술행위이다. 거대한 난로 안의 장작나무가 몸을 비틀면서 만들어내는 온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조각품들을 감상하던 나는 레오나드로 다 빈치 (Leonardo da Vinci)를 떠올린다.

500여년 전 레오나드로가 해부까지 해가면서 익힌 인간 근육의 역동성과 빛이 만들어내는 음양을 붓으로 화폭에 담은 것처럼 이곳 작가도 근육의 움직임, 얼굴표정, 옷의 주름까지도 나무에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나무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은 대단한 장인기술에 혀를 내둘렀다. 작가의 아들이 만든 두 개의 작품을 보면서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도 깨달았다. 그곳을 떠나기 전 꿀을 한 통 구입했다. 그런데 그 꿀의 오묘한 맛이 여행 중 매일 내 미각을 춤추게 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05_천금 같은 조언에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출발하자 타이어 쪽에서 올라오는 매캐한 냄새는 계속 되었다. 순간 화재의 위험을 감지한 나는 때마침 나타난 휴게소에 차를 멈췄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다른 차에서 내린 중년의 여행객이 내 바퀴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앞 바퀴 쪽에 손을 대보라고 한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나에게 한 수 일러주었다. 캠퍼밴처럼 무거운 차량을 운전할 때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저속 기어로 바꾸고 브레이크는 지긋이 계속 밟는 게 아니라 스텝으로 여러 번 짧게 눌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승용차에서 했던 습관대로 그 동안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지긋하게 오래 밟은 것이 타는 냄새의 원인이었음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천금 같은 조언에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가면서 만난 넬슨 폭포 (Nelson Falls)와 프랭클린 강 트랙 (Franklin River Track)을 우중 (雨中)에 걸으면서 운무에 포옥 둘러싸인 태고적 속살을 엿보기도 했다.

산 아래에 자리한 퀸스타운으로 내려가는 고갯길은 위험천만했다. 과거 이곳 경제를 살찌운 탄광활동의 생채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이제는 능숙하게 브레이크도 스텝으로 밟고 무거운 캠퍼밴을 달래가면서 까마득한 내리막을 내려갔다.

저 멀리 말꼬리 모양의 폭포 (Horsetail Falls)도 여유 있게 감상하면서…. 후덕한 캠핑장 주인 아주머니 덕분에 가스 스토브를 켜게 되어 저녁 요리 걱정은 덜게 되었다.

캠핑장: Queenstown Cabin & Tourist Park, 17 Grafton St. Queenstown TAS 7467 (4 stars, 화장실과 샤워장 기대 이상, 부엌시설도 괜찮음)

 

 

Day 3

 

06_타스마니아로 끌려온 죄수들은 새라 섬에서 죗값을

새벽 5시에 일어나 서둘렀다. 퀸스타운에서 불과 40키로 남짓한 스트론 (Strahan, 현지 발음에 주의 요망, 스트라한이 아님)의 항구에서 출발하는 고든 강 크루즈 (Gordon River Cruise)를 간밤에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선상 점심까지 포함된 6시간짜리 크루즈인지라 출발시간이 아침 9시다. 타스마니아 특유의 도로사정을 감안할 때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승선을 하면 스트론이 가슴에 품고 있는 빙하 활동으로 형성된 맥콰리 하버 (Macquarie Harbour)를 벗어나 우측으로 방향을 틀고 북쪽으로 향하면 병목처럼 생겨 과거 배가 자주 조난된 지옥의 문 (Hell’s Gates)이 나온다.

골이 잔뜩 나 있는 바닷물이 빠르게 소용돌이 치는 그곳에 그림 같은 등대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곧 이어 남으로 방향을 튼 배는 새라섬 (Sarah Island)에 도착하여 우리를 떨군다. 그곳에서 여행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1820년대부터 1830년대까지 타스마니아로 끌려온 죄수들은 모두 새라 섬에서 죗값을 치렀다고 한다. 포트 아터 (Port Arthur)가 만들어지기 전이였다. 감옥이나 예배당이 어느 정도 원래 형태로 남아 이제는 거대한 야외 박물관으로 변신하여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포트 아터와는 달리 새라섬에는 현재 소수의 앙상한 건물 뼈대만이 힘겹게 서 있다.

그 당시 죄수들은 주위에 흔했던 휴언 나무를 이용하여 배 만드는 노동에 동원 되었다고 한다. 동시에 죄수들에 대한 대우나 처벌이 너무 가혹해 많은 탈옥이 일어나기도 했다. 도망치면서 동료 죄수의 인육을 먹으면서 생존한 이야기,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밀림을 헤치고 결국 호바트까지 가서 나중에 오히려 측량기사로 취직까지 하게 된 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탈옥수들 이야기가 넘쳐난다.

 

07_죄수 10명은 배를 훔쳐 남미 칠레까지

그 중 가장 재미있는 사건이 1834년에 일어났다. 새라섬에서 마지막 배를 만드는데 동원된 죄수 열명은 이 배를 훔쳐 항해를 계속해 결국 남미 칠레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적도에서 남쪽으로 42도 떨어진 위도 (latitude)에 위치한 타스마니아는 칠레와 동일 위선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연극화된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The Ship That Never Was’라는 타이틀로 아직도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스트론 선착장 바로 옆에서 말이다. 새라섬에서 약 한 시간 동안 역사 이야기로 머리를 가득 채운 우리는 다시 승선을 하여 허기진 배를 채웠다.

스트론에서 준비된 기본 재료로 선상 직원들이 준비한 도시락은 먹음직했다. 점심 후 배는 밀림 쪽으로 형성된 고든 강을 따라 유유자적 운행을 한다. 이 강변을 따라 당시 지천에 널려 있던 휴언 나무를 베어다 배를 만든 죄수들의 고행을 되 뇌인다. 원래부터 귀하던 휴언 나무는 이제는 벌목이 금지되어 제재소는 자연적으로 수명을 다한 나무만을 주워다 상품화하고 있다.

크루즈가 끝나고 내리는 곳에 그런 제재소가 있다. 19세기에 사용된 방식을 고수하면서 휴언 나무 자르는 작업을 그대로 관광객들에게 보여준다. 바로 옆에는 휴언 나무로 만들어진 각종 상품들이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우리는 3대까지 쓸 수 있다는 도마를 샀다.

스트론에서 하룻밤 묵으려고 캠핑장까지 갔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 곧장 북쪽에 있는 지한 (Zeehan)까지 갔다. 19세기 후반 주석 (tin), 은 (silver), 납 (lead) 광산으로 한때 20여개의 호텔을 거느리면서 북적거렸던 영화는 사라지고 황량하기까지 한 이곳에도 캠핑장이 있다.

캠핑장: Zeehan Bush Camp & Caravan Park, 1 Hurst St. Zeehan TAS 7469 (3 stars, 화장실과 샤워장 보통 수준, 부엌시설은 기대 이하, 인디언들의 천막을 연상케 하는 Glamping이 캠핑장에 있는 것이 특징)

 

 

Day 4

 

08_좁다란 숲길을 달려 도착했다 싶었는데 강이 길을 막아

다음 목적지가 코리나 (Corinna)여서 어차피 지한을 지나야 했다. 두 곳 사이는 1시간 거리밖에 안 된다. 여행 한달 전 일정을 만들 때만해도 코리나는 내 관심 밖이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 들러 여행잡지를 보는데 파이먼 강 (Pieman River)을 포근하게 품고 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이 눈에 띄었다.

좁다란 숲길을 달려 도착했다 싶었는데 예상대로 강이 길을 막아 선다. 자세히 보니 강 건너편에서 낡은 거룻배 (barge)가 버튼을 누르면 오게 되어 있었다. 원래 이런 곳은 현대식 다리를 만드는 것보다 불편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해야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법이다.

퀸스랜드 (Queensland) 유명 관광지인 캔스 (Cairns)의 북쪽에 더 명성이 자자한 포트 더글라스 (Port Douglas)가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데인트리 국립공원 (Daintree National Park)에 가기 위해서는 데인트리 강 (Daintree River)을 건너야만 하는데 그곳도 케이블이 배를 끌어당기는 꼭 이런 식이다.

좁은 강폭이라 2분만에 건넜다. 강 건너편에 호텔 하나 있는 것이 전부다. 일단 파이먼 강을 따라 조성된 나무판 트랙을 걷다 보면 현재 자라고 있는 휴언 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다. 귀한 대접을 받는 나무를 직접 볼 수 있어 기쁨이 배가 되었다.

호텔을 뒤로 하고 주변을 둘러본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가니 뜻하지 않은 도로 이정표를 만났다. 좌로 가면 이틀 후에 갈 예정인 아터 리버 (Arthur River)가 나온다는 것이다. 비포장 도로라 지도상에 선명하게 표기되지 않아 미처 생각을 못했다.

 

09_캠퍼밴 몰고 자갈길을 이런 지형에서 운전하기는

원래 계획한대로 간다면 아터 리버를 갔다가 같은 길을 되돌아 나와야 할 판이었다. 과감하게 좌회전을 하여 자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가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이 지역이 다른 행성 같았다는 점이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턱 아래 켜켜이 겹쳐지는 주름처럼 가도가도 산등성이만 계속 되었다. 더불어 도로는 오르락 내리막을 무한정으로 반복했다.

무게 때문에 버거운 캠퍼밴을 몰고 자갈길을 이런 지형에서 운전하기는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다. 지도상에 나와 있는 도로의 길이로 한 시간쯤이면 포장된 도로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 것은 완전 빗나갔다. 도로 이정표는 고사하고 인터넷도 불통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점심 때가 지났지만 식욕이 동할 리가… 거의 두 시간을 무작정 달려도 비포장 도로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코너를 돌고 내리막길에 막 접어든 순간 저 밑에서 승용차 한대가 길을 양보할 요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의 기쁨이란….

차창을 내리고 일단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차를 세우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얼마 후 거짓말처럼 포장도로가 나오고 목적지인 아터 리버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땅끝 (The Edge of the World)이라는 해변가가 있는데 바로 호주대륙 서쪽에서 가장 끄트머리라는 곳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곳을 세상의 끝 (The End of the World)이라고도 한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한적한 캠핑장에서 회복하였다.

캠핑장: Arthur River Cabin Park, 1239 Arthur River Rd. Arthur River TAS 7330 (1.5 stars, 화장실과 샤워장 수준 이하, 부엌시설도 기대 이하)

 

 

Day 5

 

10_타스마니아에서 와규 소들이 방목되고 있는 로빈스 섬이

중간고사에서 어려운 과목들의 시험이 끝나고 오늘부터는 상대적으로 쉬운 과목들만 남아 있는 기분이랄까. 오늘부터의 여정은 북쪽에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는 도시들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우선 스미스톤 (Smithton)에 도착하자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 언덕 (Tier Hill Scenic Lookout)에 올라가 전망을 즐겼다.

저 멀리 타스마니아에서 유일하게 와규 소들이 방목되고 있는 로빈스 섬 (Robbins Island)이 보인다. 매년 1월이면 수백 마리의 소들이 말을 탄 목동들에 의해 바닷물을 헤엄쳐 이동하는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개인 소유의 섬인지라 관광객들이 이 멋있는 장면을 보기는 어렵다.

오랜만에 베이커리에서 점심을 사 바닷가 옆의 한적한 공원에서 한 박자 쉬었다. 공원 옆에는 굴 (oyster)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마침 크리스마스 휴가철이라 다 팔리고 거친 껍질이 그대로 있는 굴을 사가라고 부추기지만 거절했다.

곧이어 불과 20여 키로 떨어져 있는 스탠리 (Stanley)로 향했다. 삐쳤을 때 삐죽이 내밀어진 입술처럼 베스 해협 (Bass Strait)을 향해 반도 (半島) 형태로 돌출되어 있는 곳에 앙증맞은 스탠리가 자리하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당연히 좌회전해서 진입을 해야 한다.

이곳에는 타스마니아 랜드마크 중 하나인 더 넛 (The Nut)이 관광객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유럽인들이 19세기 초 이곳에 왔을 때 이 거대한 암석 덩어리는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케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왼쪽 편에는 걸어 오를 수 있는 가파른 길이 있고 일단 정상에 오르면 2키로 정도의 트랙이 있어 전 방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1932-1939년에 호주 총리를 지낸 조셉 라이언스 (Joseph Lyons)가 이곳 스탠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배경으로 더 넛의 정기가 분명 있었으리라. 바닷가에 있는 가게에서 굴과 오징어를 사 이날 밤 묵을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 Crayfish Creek Van and Cabin Park, 20049 Bass Highway, Crayfish Creek TAS 7321 (1 star, 화장실과 유료 샤워장 수준 이하, 부엌시설도 기대 이하)

 

 

Day 6

 

11_화산활동으로 토질 좋아 튤립과 양귀비 재배

윈야드 (Wynyard)로 가는 길목에 베스해협 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지형인 케이프 (cape)가 두 개 있다. 로키 케이프 (Rocky Cape)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돌아볼 곳이 많지만 길이 만들어진 곳까지 차로만 돌아보고 바로 나왔다.

다음으로는 테이블 케이프 (Table Cape). 과거 화산활동으로 인해 토질이 워낙 좋아 이곳에서는 주로 튤립 (tulip)과 양귀비 (poppy)가 재배되고 있는데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이 마음에 평안을 준다. 전망대 (Table Cape Lookout)에서 보면 베스해협을 따라 북쪽에 형성되어 있는 도시들을 전부 볼 수가 있다.

전망대부터 만들어진 트랙을 따라 등대 (Table Cape Lighthouse)까지 걸어가 등대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튤립은 네덜란드로 수출되고 양귀비는 약제로 사용됨을 알게 되었다.

윈야드 시내에서 점심을 사 들고 전망대 (Fossil Bluff Lookout)에 올라가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한동안 취했다. 전망대 아래 바닷가 바로 옆에서 골프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나까지 행복해진다.

연달아 이어지는 소도시들인 소머셋 (Somerset), 버니 (Burnie) 그리고 펭긴 (Penguin)을 주마간산 식으로 휙 둘러보고 다음 도시인 얼버스톤 (Ulverstone)에 도착했다. 내일 방문할 크레이들 산 (Cradle Mountain)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유리했다.

캠핑장: Apex Beachside Holiday Park, Queen St. West Ulverstone TAS 7315 (5 stars, 화장실과 샤워장 기대 이상,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

 

 

Day 7

 

12_크레이들 산 정상 대신 메리온스 전망대까지

크리스마스라 주유소가 문 닫는다는 것을 미처 생각 못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크지 않은 얼버스톤을 전부 돌았는데 다행히 한곳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다소 편한 마음으로 시골길을 따라 크레이들 산에 도착했는데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 시국에 주차장이 관광객들로 이렇게 북적일 줄이야. 사실 크레이들 산 정상에 올라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아침에 출발을 해야 하는데 우리 도착 시간이 점심 때여서 일단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차선책을 택해야 했다.

그래서 메리온스 전망대 (Marions Lookout)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곳까지 가는 길도 아름답지만 일단 전망대에 오르면 주위에 짙푸르고 투명한 자태로 누워 있는 여러 호수들이 암벽으로 된 크레이들 산과 어울려 환상적인 조합을 연출해낸다.

산악인들에게는 꽤 알려진 오버랜드 트랙 (Overland Track)도 이 전망대를 통해 계속된다. 트랙 남쪽 끝자락에 호수가 있어 배로 건너편 뭍에 내려야 5-6일간 일정이 끝나게 되어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일방통행이다.

이 트랙을 나는 8년 전 쉴라 (Sheila), 피터 (Peter), 이엔 (Ian) 그리고 알리 (Ali)와 함께 걸은 적이 있다. 세월은 어느덧 흘러 피터와 알리는 바쁘다면서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 인생이 바가지로 물 한 모금 마시는 순간만큼 짧다는 느낌이다. 북쪽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인 데본포트 (Devonport)에서 이틀 밤의 둥지를 튼다.

캠핑장: Abel Tasman Caravan Park, 6 Wright St. East Devonport TAS 7310 (3.5 stars, 화장실과 샤워장 보통, 부엌은 기대 이하, 바닷가가 가까움)

 

 

Day 8

 

13_바닷가 따라 만들어진 트랙 하루 종일 걷는 호사도

같은 캠핑장에서 이틀을 처음으로 묵은 지라 그 동안 매일같이 하던 잠자리를 손대지 않았다. 데본포트에서 멜번 (Melbourne)을 왕복하는 배 (Spirit of Tasmania)의 항구가 캠핑장에서 가까워 매일 저녁 출발하는 배를 그리고 아침에 도착하는 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진 트랙을 하루 종일 걷는 호사도 누린 하루였다. 산과 바다가 지척에 있고 호주 본토를 오가는 배가 매일 운항되며 공항까지 있으니 데본포트가 은퇴자들의 레이다망에 항상 잡혀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Day 9

 

14_시내 한 바퀴 둘러보며 초창기 개척자들의 내음을

그 동안 서쪽과 북쪽의 여정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다.  타스마니아 북쪽의 중앙에는 거대한 산맥인 그레이트 웨스턴 티어스 (Great Western Tiers)가 바지의 혁대처럼 늘어져 있는데 이 지역을 운전하다 보면 이 산맥이 계속 동행을 한다.

데본포트에서 남으로 약 50여 키로 떨어진 델로레인 (Deloraine)을 관통하는 미엔더 강 (Meander River)변 공원에서 점심을 했다. 출렁다리를 건너 오래된 교회 건물 (St Mark’s Anglican Church)을 보고 다시 강을 건너와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 초창기 개척자들의 내음을 맡는다.

곧이어 100키로쯤 남쪽에 있는 캠벨 타운 (Campbell Town)에 도착했다. 시드니 남서쪽에 Campbelltown이 있는데 철자를 비롯해 두 곳이 엄연히 다르다. 두 지역 모두 1800년도 초기 시드니 식민지를 다스린 맥콰리 총통 (Governor Macquarie)의 부인 엘리자베트 캠벨 (Elizabeth Campbell)의 이름과는 관련이 있다.

양질의 양털 생산지였던 캠벨 타운의 시내 인도에는 초창기 타스마니아로 끌려온 죄수들의 이름, 죄목, 타고 온 배 이름과 직업 그리고 사망날짜가 박힌 벽돌들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다. 이름하여 Convict Brick Trail. 하나씩 읽어보면 캠벨 타운 주위에 널려 있는 건물과 다리 등이 대부분 죄수들 손을 거친 것임을 짐직할 수 있다.

 

15_로스 다리… 호주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다리

그 중 레드 브리지 (The Red Bridge)는 100만개 이상의 벽돌로 만들어져 아직도 남북을 잇는 주요 도로로 사용될 만큼 견고하게 만들어진 다리이다. 1838년에 완공이 되자 조금 떨어진 곳으로 흐르던 강 줄기를 이 다리 밑으로 흐름을 바꾸어 지금은 분위기가 평화롭다.

서둘러 다음 행선지인 로스 (Ross)에 도착했다. 로스도 캠벨 타운처럼 타스마니아 북쪽의 론세스톤 (Launceston)과 남쪽의 호바트를 잇는 주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곳에도 다리 (Ross Bridge) 건설이 절실했다.

영국에서 노상강도 죄목으로 끌려온 데니엘 허버트 (Daniel Herbert)는 이 다리에 자신의 혼을 집어넣어 수백 개 모양의 조각을 새긴다. 완공시기상 호주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다리라는 것 외에 로스 다리는 예술적으로 호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리 바로 옆에 캠핑장이 있다. 늦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전 다리 위와 아래를 걸으면서 다리 건설로 자유의 몸이 된 허버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되돌아 보았다.

캠핑장: Ross Caravan Park, Esplanade, Ross TAS 7209 (3.5 stars, 화장실과 샤워장 보통, 부엌은 기대 이하, 바로 옆에 로스 다리와 강이 있음)

 

 

Day 10

 

16_이번 여행으로 호주 역사에 길이 남을 다리 세 개를

여행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다음날 캠퍼밴을 반납하고 시드니 행 비행기를 타야 했으므로 공항 근처의 캠핑장에 마지막 밤 숙소를 잡기로 했다. 호바트로 향하면서 오트랜스 (Oatlands)에 들렀다. 여느 도시들처럼 19세기 초반에 정착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죄수들 노동력으로 지어진 수많은 사암 건물이 현존하고 있는 곳이다.

덜버톤 호수 (Lake Dulverton)가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어내던 제분소 (製粉所)가 우리나라 물레방아와 유럽의 풍차를 연상케 한다. 중년 나이 때 영국에서 타스마니아로 이주해 온 존 빈센트 (John Vincent)는 호텔사업으로 돈을 모은 다음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던 밀을 가공할 요량으로 제분소를 만들게 된다.

소문에 의하면 단순히 밀가루만을 팔아서는 많은 부를 축척할 수가 없어서 몰래 위스키를 생산할 요량으로 제분소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호바트 공항에서 가까운 캠브리지 (Cambridge)에 있는 캠핑장으로 향하면서 자연스레 리치몬드 (Richmond)에 들러 호주에서 가장 오래 된 다리 (Richmond Bridge)를 둘러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으로 호주 역사에 길이 남을 다리를 세 개나 만난 셈이다.

캠핑장: Barilla Holiday Park, 75 Richmond Rd. Cambridge TAS 7170 (4 stars, 화장실과 샤워장 기대 이상, 샤워는 시간제한 있음, 부엌은 사용하지 않음)

기후 변화로 호주 대륙도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고 한다. 현실에 예민한 사람들은 타스마니아로 이주를 하거나 고민해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는 시드니에 살던 모 교수는 호바트로 이사를 한 후 짧아진 출퇴근 시간으로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한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자녀들도 타스마니아를 바라보는 시각이 사뭇 달라질 수도 있겠다. 이제부터 우리 교민들도 좀 더 타스마니아에 관심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여행이었다.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챨스스터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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