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참 희한한 녀석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놈이 학교수업이 끝나면 지네 집에 갈 생각을 해야 할 텐데 연신 히죽대며 쫄랑쫄랑 제 뒤를 따라옵니다. “야, 태선아. 나 오늘 니네 집에 가도 되지? 응? 응? 야, 태선아…” 하며 어쭙잖은 애교(?)까지 부립니다.

그러고는 “엄마, 저 왔어요!” 하며 저보다 먼저 집안으로 달려들어가 지 엄마라도 되는 듯 우리 엄마 품에 와락 안깁니다. 오늘은 잡채가 먹고 싶다느니, 이상하게 돼지갈비가 땡긴다느니, 엄마가 만든 감자탕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느니… 너스레까지 떨어댑니다.

이것저것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난 다음에는 아예 이불 속으로 다리를 쭉 뻗고 들어옵니다. 미친놈… 녀석은 그런 식으로 우리 집에서 몇 날 며칠을 먹고 잔 날이 부지기수였고 한 달이 넘도록 우리 집을 제 집처럼 여기며 아예 눌러 산 적도 있었습니다.

이부현… 고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만났지만 저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친구가 돼버린 그와의 우정은 벌써 48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즘도 한국에 가면 서로 얼싸안고 서슴없이 육두문자(?)까지 섞인 우정을 과시하는 친구입니다.

부현이 외에도 민서, 홍섭, 인환, 철주… 중학교 때부터의 절친들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부현이보다 더 가깝게 지낸 친구들이었지만 고등학교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들과는 성인이 돼서도 종종 만나긴 했는데 1980년 광주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홍섭이가 우리 앞에서 시뻘개진 눈으로 게거품(?)을 문 후부터는 이래저래 단절이 돼버렸습니다.

그 후 대학에서나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아무래도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 집을 제 집 드나들 듯 하고 친구 옷이 내 옷이며 친구 물건이 내 물건인 사이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늘 보일 듯 말 듯한 ‘묘한 선’ 같은 게 그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의 나라 땅에 와서는 더더욱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넓고 얕게’ 보다는 ‘좁고 깊게’ 사람을 사귀는 성격인지라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럼에도 19년의 시드니 생활에서 의미 있는 친구 몇은 둔 듯싶습니다.

하지만 부현이처럼 말도 함부로(?) 하고 막(?) 대하는 친구는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모두들 ‘어려운 친구’인 셈입니다. 저는 그 친구들을 ‘부회장님, 원장님, 사장님, 회계사님, 형제님’ 등으로 부르고 그들도 저를 ‘태선아!’라든가 ‘토니야!’대신 ‘김 사장님’이나 ‘형제님’ 정도의 호칭으로 대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나이에 새로 만난 친구 사이에는 그 만큼의 거리감 정도는 있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상태에서 갖는 친구관계… 그런 사이가 훨씬 편안하고 오래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계세요?” 2주 전 토요일 오후… 뒷마당에서 아내와 함께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한 5, 6분 정도 후에 도착할 거예요”라는 말대로 이내 그의 차가 우리 집 앞에 섰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그의 차림새를 본 순간 ‘아! 낚시 갔다 오는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 트렁크를 연 그는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른 주먹보다 훨씬 큰 소라 일곱 개 그리고 얼음에 채워온 킹피시 한 마리였습니다.

카약까지 타고 들어가 힘들게 잡은 킹피시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저에게 건네주고 돌아서는 그의 얼굴에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 좋음 같은 게 서려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뭐라도 생기면 나누려 하고 좋은 게 있으면 공유하려 하는 좋은 친구… 그날 저녁, 생각지도 않은 킹피시 회와 소라 회를 놓고 술잔을 부딪치며 ‘친구’라는 단어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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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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