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의 유혹?!

“어머! 우리는 자기… 새댁인줄 알았어.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신도시 서른 두 평 아파트에 입주하다니… 능력도 좋네. 아님 부모 덕 좀 봤나?’ 생각했지.” 나중에는 절친이 된 같은 동 아내친구들이 털어놨던 이야기입니다.

1993년의 일입니다. 안 그래도 한참 어려 보이는 아내는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내려뜨리고 옷도 늘 소녀소녀하게(?) 입고 다녔으니 그런 오해를 살 만도 했습니다. 어느 누가 봐도 ‘아홉 살짜리 아들과 일곱 살짜리 딸을 가진 애 엄마’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신이(?) 났습니다. “자기야, 나 오늘 신기한 일 있었다!” 낮에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역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계속 따라오더니 급기야 “사귀고 싶다”고 했다는 겁니다. “죄송한데, 저 애 엄마예요”라는 아내의 말에 그 남자는 얼굴이 빨개지며 황급히 꼬리를 감췄다고 합니다.

이 같은 아내의 ‘어려 보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영장에서 아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40대 초반, 심할 경우 30대 중반으로까지 내려 본다고 합니다. ‘손주가 둘이나 있는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다들 뒤로 넘어간답니다. 어쨌거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아내가 어려 보이는 비결은(?) 타고난 것도 어느 정도 있긴 하겠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꾸준한 운동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아내는 같은 아파트 친구들과 매일 수영장과 짐 (Gym)을 찾았습니다. 특히 접영부문에서는 수영선수(?)급 실력에 메달도 여러 개 따냈고 내친김에 인명구조요원 자격시험까지 준비하던 중에 기나긴 호주여행 길에 올랐던 겁니다.

이곳에 와서는 먹고 살기에 바빠 거의 10년 동안은 수영과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다시 물과 함께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늘 활기차 보입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몸이 안 좋아도 어지간해서는 수영을 빼먹지 않는 아내의 근성과(?) 산과 바다에서 얻는 자연의 힘이 아내를 더더욱 젊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모양입니다.

“와! 맛있겠다!!” 한가한 저녁시간, 둘이서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소리입니다. 한국 TV 저녁프로그램에는 유독 먹는 그림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해삼, 멍게, 산낙지, 조개구이 등 이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음식들을 보면 침이 꼴깍꼴깍 넘어갑니다.

지난 수요일 밤에는 어찌 된 게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치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 치킨에 맥주 한잔 할까?” 아주 잠시 잠깐 아내의 눈이 흔들리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떡입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그리고 하이네켄 다섯 병… 우리의 반칙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뺄 살이 얼마나 있다고… 아내는 얼마 전부터 다이어트를 한다며 각종 곡물들로 만들어진 한 봉투 짜리 뉴트리밀, 선식(?)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장난 삼아 그런 아내를 꼬십니다. “오늘 우리… 사시미, 스시에 술 한잔 어때?” 혹은 “날씨도 차가운데 스팀보트에 소주 한잔 할까?” 이런 식입니다. 독한 맘 먹고 선식으로 한 끼를 때운 착한 아내는 거의 예외 없이 저의 유혹을 받아줍니다.

“너 때문에 오늘도 망했어. 하여튼 도움이 안 된다니까… 어휴, 저 웬수…” 저를 향해 밉지 않게 눈을 흘기는 아내의 모습이 저는 너무너무 귀엽기만 합니다. “바보야, 뭐든 기분 좋게 먹으면 보약이고 기분 좋게 마시면 다 약주인 거야. 자, 자, 얼른 먹자구! 짠!”

그날 밤 우리는 그렇게 철없던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가 신나는, 맛 있는 시간을 보냈고 그 속에서 36년 전 처음 만났던 아내의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까짓 살 좀 덜 빼고 좀 덜 어려 보이면 어떻습니까? 지하철 역에서 대학생이 사귀자고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맛있게, 즐겁게, 건강하게 사는 게 우리에게는 훨씬 더 큰 기쁨, 더 큰 행복인 것입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
Next article공동소유 vs. 공동지분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