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낯선 땅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걱정입니다. 아니 돌아간다 해도 그분이 저를 알아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왜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사연을 이야기하자니 울화통이 터집니다. 정신 없는 이 집 아줌마 때문입니다. 아줌마는 건망증이 심합니다. 매일 쓰던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찾는 건 아줌마의 일상입니다. 그런 아줌마의 건망증이 제 운명을 이렇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제가 할머니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오래 전 할머니의 첫 손자 결혼식 때부터입니다. 그 해 봄은 화사한 연분홍 저고리와 하늘빛 치마폭에 감겨 행복했습니다. 벚꽃이 만발한 그 날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과 바람에 살랑거리던 할머니의 치맛자락이 떠오릅니다. 환하게 웃던 할머니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손자와 함께 행복하던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손자는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할머니는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충격으로 한동안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날 입었던 한복은 옷장 깊숙이 넣어버리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할머니가 나들이할 때는 저를 꼭 챙기셨습니다. 아마도 손자에게 받았던 선물이라서 할머니 마음 한 자락에 애틋함으로 남아 있나 봅니다.

두 해 전 가을, 그러니까 코로나 이전입니다. 서울에서 이 집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결혼식 날 할머니는 새로운 한복을 입었습니다.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할머니는 한복이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맵시 있게 한복을 입고 마지막으로 제가 나서자 정말 멋지다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고운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연신 벙싯벙싯 웃었습니다. 호주에 사는 아줌마네 가족도 오고 일가친척들이 다 모였습니다. 모두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고 떠들썩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잔치에 가니 저와 비슷한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고상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사람들의 눈길이 제게 쏠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우쭐한 마음에 제 콧대도 한껏 높아졌습니다. 며칠 동안 북적이던 잔치가 끝나고 호주에서 왔던 가족들도 모두 돌아갔습니다. 저도 피곤했던 몸을 꼼꼼히 씻고 쉬었습니다. 며칠 뒤 갑자기 제 방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엄마가 찾는 것이 이게 맞으려나? 아무튼, 가져가 보자.”

할머니의 손녀가 저를 꺼내더니 이리저리 둘러보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꼼짝 못 하고 봉투에 담겼습니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지만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가방 속에 넣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리가 들리며 어디론가 한참을 갔습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리고 기계 소리도 들리다가 쿵 소리와 함께 저를 실은 가방이 던져졌습니다. 그 충격에 아득해지며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더니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난 듯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붕붕거리는 차 소리도 들리더니 다시 또 어디론가 한참 갔습니다. 도착한 곳은 호주였습니다. 가방이 열리고 저를 본 아줌마는 실망하는 눈빛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에구, 이거 내 것이 아니야, 잘못 가져왔네. 어떡하니?”

 

서울 잔치에 다녀온 후 아줌마는 자신의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찾다가 서울에 사는 딸에게 전화한 모양입니다. 아마도 시댁인 서울 집에 두었던 거로 기억하고 딸에게 호주로 올 때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딸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엄마 것인 줄 알고 그냥 싸 들고 온 것입니다. 저는 영문도 모른 채 호주까지 강제로 왔으니 언제 다시 서울로 가게 될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어둡고 컴컴한 구석방에서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외롭고 낯선 환경에 지내다 보니 사람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줌마의 건망증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외출할 때면 한 번에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깜빡 잊고 두고 나간 물건을 다시 가지러 몇 번을 들락거린 후에야 외출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곰국을 끓이다 잊고 잠이 들어 솥을 까맣게 태우고 집에 불이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세상과 작별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아줌마가 대청소 하느라 집안을 온통 뒤집다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여기에 있네?”

자신이 찾던 상자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제대로 챙겨오고선 기억을 못 하고, 애꿎게 서울에 있는 저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줌마가 서울에 전화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저의 주인인 할머니가 치매가 왔는데 점점 증상이 심해진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제가 여기에 와 있는 줄도 모릅니다. 치매가 있으니 밖에 나가는 일도 자유롭지 않을 테지요. 게다가 요즘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어서 호주에서 한국을 가기가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서울에 돌아가도 함께 나들이할 기회도 없을 거로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아줌마는 가끔 상자를 열어 저를 보고 한숨을 푹 쉽니다. 서울에 가게 되면 도로 데려다 주겠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합니다. 자신의 건망증 때문에 공연히 저를 오게 한 자책을 합니다. 할머니의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저도 가슴이 조여 옵니다. 제가 돌아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그분이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거나 아,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하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홀로 남아 있다가 결국 버림받게 되면 어쩌나 하는 슬픈 생각도 듭니다. 상상하기조차 싫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어서 물러가고 저도 할머니 곁으로 돌아가서 함께 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할머니의 비단 꽃신입니다.

 

 

김미경

(수필동인 캥거루 회원·수필집: 배틀한 맛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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