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과 송정아

가수 임영웅을 3년 전 영상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트로트 경연대회에 참가 중이었는데 마침 방학 중이어서 매주 재미를 더해가던 대회를 빼놓지 않고 시청할 수 있었다. 음악적 이론에 문외한인 나를 감동시켜 펑펑 울게 만든 그의 창법에는 나름대로 독특함이 있었다.

아내 송정아를 36년 전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당시 그녀는 대학교 마지막 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나는 타국에서 학위를 위해 공부하느라 집도 절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성을 사귀는 것에 문외한인 내가 감격하여 결혼해달라고 애걸하게 한 그녀는 나름대로 신비로움이 있었다.

임영웅이 트로트 경연에서 최종 우승하여 당연 트로트만 전문적으로 하는 가수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2022년에 발매된 그의 첫 정규앨범에는 트로트 뿐 아니라 발라드, 팝, 댄스, 힙합 그리고 포크 등의 장르가 촘촘하게 수록되어 있다. 또한 그의 음악은 전 세대가 좋아한다. 단지 음악장르가 다양해서가 아니라 어느 연령층에도 먹히는 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갓 스물을 넘긴 송정아와 신접살림을 타국에서 시작할 무렵 각시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오산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원어민을 대하는 것에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오래지 않아 그 생뚱맞은 외국어도 금방 익히는 탁월한 언어감각을 뽐냈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 책임감을 공유하면서 살림살이와 육아를 아등바등 해냈다. 또한 그녀의 성품은 식구나 친척을 넘어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도 호감을 산다. 타고난 착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영웅에게 ‘노래는 타고난 것이다’라는 정설이 통하지 않는다. 운동선수들이 기초체력 운동을 꾸준히 하듯이 가수는 발성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대접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노래하면 성대 주변의 근육만 이용하여 노래하기 때문에 목이 금방 쉰다. 성대는 소모성 근육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고음을 지르면 성대가 이내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허스키 보이스가 나오고 가끔 음이탈이 생긴다. 그는 성대접지력이 뛰어난 가수다. 또한 흉성을 사용하여 노래가 묵직하고 안정감이 있게 만든다. 남자가수들에게 특히 흉성은 단전호흡 같은 것이다. 임영웅은 목 해부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송정아에게 ‘현모양처는 타고난 것이다’라는 정설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역할을 해냈다. 내 청혼을 도도하게 퇴짜 놓았던 아내는 결혼식장에서는 보라색을 머금은 한 떨기 아이리스처럼 피어났다. 이내 저렴한 셋집을 찾아 구석구석 뒤지고 손때 묻은 세간 꾸려 이사 다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항상 따뜻한 밥을 내놓았다. 평생 남편에게 큰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으며 가슴팍 한 겹 얇아져도 내색 못하는 아내는 진정 내 갈비뼈에서 파생된 분신임에 틀림없다.

임영웅이 상대하는 대중들은 낯선 것은 싫어하지만 동시에 신선한 것을 원한다. 또한 무난한 것을 좋아한다. 그는 노래를 자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실 가수의 개성이 너무 강하면 노래를 여러 번 들을수록 질리게 된다. 그의 노래는 귀에 거슬리지 않아 집밥과 같다. 그래서 수십 번 들어도 낚싯줄에 걸려 나온 물고기마냥 여전히 푸덕거린다. 그의 음반에 있는 주옥 같은 총 12곡을 내가 전부 외우다시피 한 연유다. 그의 창법은 가볍고 유려하다. 그래서 트로트를 맛깔 나면서도 고급스럽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노래에는 서사가 있다. 가사가 정확히 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송정아의 말과 행동에는 과함이나 부족함이 없다. 결혼 초부터 지금껏 호수처럼 잔잔하다. 십 년 주기로 나이듦의 연결이 유연하다. 매일 살갗을 스쳐도 질리지 않다. 남편과 자식 대하는 것이 운전 잘하는 사람들이 뽐내는 코너링 같다. 뒷좌석의 음료수가 안 흔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평생 아내와 서로 얼굴 붉힌 적이 한번도 없다. 가끔 또래의 다른 부부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 결혼 방정식에 혼돈이 오기도 한다.

임영웅은 노래할 때 표정이 좋다. 대중에게 투영되는 시각적인 가수의 외모는 중요하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편하다. 또한 그는 발음에 멋을 낼 줄 안다. 그래서 이미 한 물 간 노래도 촌스럽지 않게 들린다. 노래를 들어보면 1절에 비해 2절에서는 한 단계 높은 다이나믹을 사용하여 대중들을 심리학적으로 사로 잡는다. 그리고 성구전환을 통해 진성과 가성의 연결을 유연하게 만든다. 동시에 강약이 중간에 있다. 그러면서 힘의 밀당도 한다. 소리를 드라이하게 빼도 따뜻하게 들리는 이유다. 성대가 여러 개 있는 가수라는 극찬을 받는 연유이기도 하다.

송정아의 표정은 항상 밝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매일 남편에게 미소를 날리는 아내다. 마음이 평평해 그림자가 없다. 겨울 추위에 딴딴해진 호박도 그녀 품 안에서 물컹물컹해지며 봄의 씨앗을 잉태할 정도다. 내 젊을 적 지글지글 끓었던 성격이 공기에 소리 풀리듯 허우적대면서 옅어진 것은 후덕한 부인 덕분이고, 부족한 내 학문적 자질이 출렁일수록 꽉 잡아주는 닻밥이 아내였다. 여성스러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동반자다.

임영웅을 알게 되고 나서 그 동안 기존의 가수들에게 깜빡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송정아를 알고 나서 그 동안 남성스런 우리 집안의 여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여자들에게 깜빡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 늦게나마 다행이다.

 

 

박석천 교수의 '따로 또 같이' 여행기 ① 뉴질랜드 북섬, 그 북쪽의 끝을 가다!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챨스스터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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