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 들어 맞닥뜨리면서

우리 모두 헐레벌떡 걸었다.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어떤 이들은 뛰기까지 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보금자리 마련이라는 명분으로 경제활동에 올인 했다. 배우자와 자식들을 옆구리에 끼고서. 당연히 친구들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었다. 길을 걷다가 / 길인 줄도 모르다가 / 걷고 있는 줄도 모르다가 / 헐떡이며 쉬다가 / 쉬다가 나는 저만치 있는 / 나를 보아버렸다 /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찬규 ‘길 위의 거울’)

지난 40여년을 서둘러 걷다 보니 숨이 목젖을 짓누른다. 군내 나는 60대가 되자 비로서 길 위에 선 목적을 내려놓고 잠시 다리 쉼을 하는 여유를 부린다. 그제서야 길 위의 동반자였던 ‘저만치 거울’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현 모습을 마주한다. 불현듯 옛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마음이 하염없기 때문이다. 이 나이 때에 흔히 나타나는 증세다. 그래서 뭉치기로 했다. 그것도 호주에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이 여행일정을 일년 전부터 짜는데 몰두했다. 어떻게 하면 이 커다란 대륙을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여행 중 비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 장담했건만 시드니 도착 첫날부터 비는 우리와 함께 했다. 초보 가이드의 체면이 심하게 구겨진 상황이 되고만 것이다. 그래도 공항에서 마주한 방문객들의 얼굴에는 고향집 골목에서 만난 목련처럼 반가움이 묻어났다. 시드니에서는 반나절만 보냈다. 맨리 (Manly)로 향하는 페리를 타면서 우리는 그 동안 하지 못한 손바닥과 손등의 온기를 나누었다. 오페라 하우스 (Opera House)와 하버 브리지 (Harbour Bridge)를 눈에 담으면서 서로 가족들 안부도 확인했다. 훌륭하게 자라 자기 몸 하나는 건사하고 살 수 있는 자식들이 고맙고 평생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들이 교차했다.

거대한 ‘울루루 (Uluru)’ 주변을 세 시간 넘게 걸으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조각들을 일제히 꺼내 든다. 모양들이 제 각각이다. 친구가 어렵사리 꺼내든 마음 한 조각은 내 것과 일치하지 않아 어색하다.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이라서겠지. 그런데 듣는 순간 그 조각이 내 마음에 박힌다. 아웃백의 붉은 대지를 같이 걸으면서 상대방의 묵언을 읽어주는 동료의 마음이 있으니 긴 여정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마칠 수 있었다.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캔스 (Cairns)에서는 여행의 허기와 그리움의 시장기를 함께 모여 요리하고 마시고 떠들면서 해결했다. 동시에 저녁의 안식도 소홀하지 않았다. 매일이 강행군이었으니. 기후변화의 은미한 상황을 보기 위해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Great Barrier Reef)’를 찾았다. 기후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깊이 와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과 점점 때깔을 잃어가는 산호초는 왠지 서로 거북해하는 것 같았다. 산호초에게는 분명 환절기다. 달라진 바다 온도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 것이 눈에 보인다. 우리는 스노클링을 하면서 아픈 몸을 웅크려 가만히 숨만 쉬는 산호초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파종했다.

서호주 (Western Australia)는 영락없이 MZ 세대이다. 특히 퍼스 (Perth)는 흡사 밀랍의 상자 같다. 벌들이 하루 종일 꿀을 따듯이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쉴새 없이 땅을 판다. 도시 근방에는 자원이 고갈돼 점점 더 먼 내륙 오지까지 비행기로 날아가 광산을 캔다. 상자에 꿀이 넘쳐나 새로운 주거지 건설이 지천이다. 도로조차 폼이나 보인다. 퍼스에 어둠이 찾아오면 도심 고층빌딩에 이 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광산회사명이 방문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서호주를 부유하게 만드는 땅이 궁금해 북쪽으로 달렸다. 바다와 육지 사이를 휘돌고 광야를 가로질렀다. 이내 노란 융단이 깔린 것처럼 모래 위에 널브러져 있는 고만고만한 수천 개의 ‘피너클스 (Pinnacles)’가 장관을 이룬다. 생명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곳에 수 만년 동안의 풍화를 이겨낸 석회암 조각들이 사막 위에서 표현예술을 펼치고 있다.

자연의 원대함을 더 느껴보기 위해 다음 날 우리는 두 대의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늘에 세 들어 사는 구름을 발 아래로 짓밟으며 날았다. 만만한 거리가 아닌 것이 가는 길에 주유를 위해 착륙을 한번 해야 할 정도였다. 비행 도중 일행은 젊은이 못지 않은 호기심으로 무장을 한다. 생전처음 접한 낯선 호주 아웃백의 속살이니 그럴 수도. 이내 나의 위키백과사전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일행이 스토리텔링 할 소재들을 얻으니 다행이다.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고 하지 않던가? ‘벙글벙글스 (Bungle Bungles)’에 도착해 인간을 압도하는 암석들을 보면서 우리는 침묵했다. 그저 바라보면서 몸으로 느꼈다. 탄성도 지르지 않았다. 감동은 각자의 모양대로 가슴 속에 쌓아두었다. 그리고 우리는 경청했다. 우주의 영혼이 암석에 기생하여 끊임없이 산소를 만들어내는 박테리아를 매개로 우리에게 속삭였다. 그곳 계곡에서 우리는 모두 새가 되었고 들꽃으로 변했다. 슬픔과 고통도 지나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무섭지 않았고 우리는 욕망도 내려 놓았다.

퍼스 남쪽의 ‘마가렛 리버 (Margaret River)’라는 지역에 포도밭이 발에 치인다. 토질, 일조량, 강우량, 기온 그리고 바닷바람 등이 합세하여 최고 품질의 포도를 영글게 한다고 한다. 달콤한 포도주의 향기 때문이었을까? 일주일 이상을 같이 부대끼다 보니 앳된 이십 대 적의 있는 척 / 아는 척하기는커녕 오장육부를 뒤집어 보여줄 요량이다. 우리에게 점잔을 뺀다든가 고리타분하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솔직하다 못해 울컥하기도 했고 상대적인 비교 앞에 쭈그러들지도 않았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공유했다. 이 기분으로 우리는 땅끝마을인 오거스타 (Augusta)에 가서 인도양 (Indian Ocean)과 서던 오션 (Southern Ocean: 호주 대륙의 아랫도리부터 남극까지 걸쳐진 바다)이 만나 서로 집어삼키는 광경을 목도했다. 온순한 서던 오션도 거친 인도양을 만나니 금세 물이 들어 덩달아 난리방구다. 매서운 바람까지 가세한다. 동시에 일행 중 한 명의 모자가 뒤집어지며 꼭꼭 숨어 있던 벌거숭이 머리가 들어난다. 그 찰나를 놓칠세라 누군가의 몹쓸 손가락이 카메라를 눌렀고. 천기누설이 뼈아픈 기억으로 재탄생하던 순간이었다. 세월이 안긴 신체적 노화에 눈깜짝할 우리가 아니었다. 여전히 의기투합했다. 이곳에서 두 대양의 물이 하나 되듯이. 불과 며칠 전 브룸 (Broome) 바닷가에서 낙타와 석양이 우리와 하나 되었듯이. 영토 쟁탈전이 살벌하던 1802년 근처 바닷길에서 조우한 영국 탐험가 메튜 플린더스 (Matthew Flinders)와 프랑스 탐험가 니콜라스 바든 (Nicolas Baudin)이 적대시하기보다 하나가 되어 미지의 호주 땅덩어리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듯이. 우리는 이 나이 들어 우리 방정식대로 호주에서 ‘맞닥뜨리면서 (Encounter*)’ 하나가 되었다. 각자의 떨림이 모여 잔잔한 울림이 된 것이다.

 

*메튜 플린더스와 니콜라스 바든이 만난 곳을 ‘인카운터 베이 (Encounter Bay)’라고 하는데 이 지명에서 잠시 빌려 썼다.

 

 

박석천 교수의 '따로 또 같이' 여행기 ① 뉴질랜드 북섬, 그 북쪽의 끝을 가다!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박석천

 

 

 

 

Previous article‘그 놈이 그 놈’ 소리 안 듣도록…
Next article우리 동네에서는 어떤 행사가? 라이드 카운슬 Carers Support Talk & High 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