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파이팅’은 안 쓰기로 했습니다

빚투… 최근 들어 한국사회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신조어입니다. 성폭력 고발운동을 의미하는 ‘미투 (Me Too)’에서 파생된(?) ‘빚투’는 연예인 혹은 유명인들의 부모와 관련된 ‘빚 (Debt)’에 대한 고발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상’이라는 뜻을 가진 ‘아이돌 (Idol)’도 언제부터인가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젊은 연예인, 주로 가수를 일컫는 말’로 그 의미가 변형됐습니다. 거기에 연기돌, 트롯돌, 개그돌, 체육돌, 성인돌 등의 희한한 용어들도 점차 일반화 돼가고 있습니다.

‘역대급’이라는 말도 점점 그 파워를 더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역시 의미 자체가 모호한 말이지만 ‘역대 최고’ 혹은 ‘사상 최악’ 등의 의미를 대신하는 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겁니다.

표준국어사전에서는 ‘영부인 (令夫人)’을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 풀이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동네 중기엄마에게도 유정엄마에게도 모두모두 영부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영부인이 마치 ‘대통령 부인’을 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잘못 쓰이고 있습니다. 대통령 부인도 영부인이지만 영부인이 곧 대통령 부인은 아닌 것임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잘못 쓰이는 말들의 중심에는 신문, 방송, 잡지 등 이른바 언론들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이상한 말들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쏟아내기도 합니다. TV 자막에는 맞춤법이 틀리거나 잘못된 표현들이 차고 넘칩니다.

저 또한 글 쓰는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표현을 쓰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가끔 의도치 않은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외국어라서, 특히 일본말이라서 무조건 안 써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최근 저는 그 동안 자주 써오던 ‘파이팅’이라는 말을 안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심코 쓰던 말이 잘못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 동안은 모르고 사용했을지라도 지금부터라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CBS노컷뉴스 박세운 기자의 11월 28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쓰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일본식 표현은 ‘파이팅 (Fighting)’이라는 구호입니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이 개최한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 정착을 위한 스포츠미디어 포럼’에서 홍윤표 OSEN 선임기자는 “파이팅’은 일본식 조어 ‘화이토’에서 비롯된,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용어인데 일본에서조차 ‘파이팅’이라는 구호는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출신 스포츠행정가 조재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오래 전부터 “파이팅’은 일제시대 가미가제가 전투에 나가기 전에 외쳤던 말에서 유래됐다. 우리 정신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단어라면 과감하게 버리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수많은 스포츠 지도자와 선수들은 지금도 ‘파이팅’ 구호를 외칩니다. 선수와 인터뷰할 때 더 잘하겠다는 의미로 “파이팅 하겠다”는 말을 듣는 경우도 많습니다. ‘파이팅’은 영미권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용어입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그 말의 의미를 모릅니다. 자칫 ‘싸우자’는 호전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이를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파이팅’은 스포츠 현장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정말 많이 쓰이는 표현입니다. 특히 회식자리 같은 데에서는 너무너무 많이 듣게 되는데 ‘파이팅’은 우리말 ‘아자’ 혹은 ‘으랏차차’로 바꿔야 합니다. 이 같은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파이팅’이라는 구호에 워낙 익숙해졌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잘못된 표현에 대한 더 이상의 대물림은 없어야 합니다. 앞으로 주요 스포츠 행사에서 취재진은 선수들에게 ‘파이팅’ 구호와 촬영자세를 요구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선수들도 ‘으랏차차’나 ‘아자’를 외치며 각오를 다진다면 바람직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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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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