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사랑이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는 이름이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 이름은 그냥 할머니인 줄로 알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던 조선시대 1901년 강씨 가문으로 시집와서 1906년에 우리 아버지를 낳으셨다. 진주 강씨 족보에는 우리 할머니를 김해 김씨로만 표기하고 있다.

그 당시 여인들은 명문가 외에는 거의가 이름이 없었고, 무슨 무슨 댁으로만 표기했다. 그러다가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일본식 이름 자와 숙 그리고 희와 옥 등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그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시절 여자아이들 이름은 거의 예외 없이 영자, 정자, 순자, 민자 등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는 이름을 가지고 많이 놀려 먹었고 울리기도 하였다. ‘희’ 돌림으로 안영희, 조용희 등도 우리의 놀림감이었다. 순, 숙 등도 많았다. 현인이 불러 히트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우리의 애창곡이었다.

한 여자아이는 강수마자였는데 공부를 아주 잘 했다. 또 한 여자아이는 전자였는데 하필이면 성이 주씨였다. 그래서 우리가 “주전자 물 좀 줘” 하며 놀려 먹었다.

어느 딸 많은 집 막내딸 이름이 이제 딸 그만 낳자 해서 딸매기였다. 붓글씨 시간에 나는 붓으로 약간 고쳐 쓰고, 딸매기는 고쳐 쓰지 않았다고 형편없이 쓴 딸매기 것은 벽에 전시하고 내 것은 끼워주지 않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섭섭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내 여동생 친구는 끝엽이었다. 이것도 딸은 그만 낳자는 뜻이다. 한 남자아이 이름은 도석이었는데 키가 작아 우리가 도토리라 놀렸지만 훗날 그는 온 나라의 감옥을 찾아 다니며 죄수들을 교화시키는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한 대형교회의 초청으로 시드니에도 다녀갔었다.

우리 5촌 고모 중에 늘 환하게 웃는 얼굴에, 특히 나와 작은 형을 총애했던 덩치가 뒷산만큼 컸던 분이 계셨다. 큰방에서 태어났다 하여 큰방 애기로 통했다.  시집 간 후에는 우리가 큰뱅이 고모로 불렀다.

강씨 8촌 중에는 장수하라고 골목개 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아이가 있었다. 이름값을 하는지, 천박지축 날뛰며 싸움질을 하기 일쑤였다. 이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1960년대 이후는 서울을 필두로 하여 좀 멋진 이름, 미경, 은경, 은숙 등이 성행하다가 다음에는 좀 세련된 이름 하은 예은 예림 등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우리 강씨 친척 아저씨 중엔 청년시절 손에 검은 점이 하나 있다 하여 이름이 점손이었다. 그는 훗날 일본비행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공군 창설 시 김 신 등과 함께6.25전쟁이 발발하자 전투조종사로 혁혁한 공을 세워 마침내 장군이 된 사람도 있다.

요즘은 호주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영어이름이 판을 친다. 우리손녀들도 모두 영어이름으로 통한다. 큰 손녀는 구약성경의 용감한 청년 야곱의 아름다운 아내 라헬을 그 이름으로 정했다. 영어발음으로는 레이철 이라 부른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레이철 캥 (Rachel Kang) 이다. 브리즈번에 사는 손녀 이름도 은혜라는 뜻의 그레이스이다. 학교에서는 그레이스 캥 (Grace Kang)이다.  마지막 손녀 이름은 엠마로 지어서 학교에서는 엠마 캥 (Emma Kang)으로 통한다.

미국의 명문 케네디 가에는 형제들과 조카 등 멋진 이름들이 많다. 35대 대통령 존 케네디를 비롯하여, 로버트 케네디, 조셉 케네디, 테드 케네디, 에드워드 케네디 등. 이들은 모두 비극적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 어느 아침에 택시를 잡아타고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러자 택시운전수는 지금 곧 처칠 수상의 연설이 시작됨으로 손님을 태울 수 없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처칠은 ‘내가 바로 그 우라질 처칠이요’ 했다는 일화가 있다.

처칠 하면 그의 리더십과 결단력으로 영국국민의 단합을 고취시키고 연합군의 의지를 고취시켰던 전쟁연설이 기억된다. 요한스트라우스의 이름을 떠 올리면 ‘봄의 왈츠’가 화사하게 마음을 흔든다.

나의 본명은 강계형 (姜季亨)이다. 진주 강씨에 끝계 그리고 형통할 형이다. 풀이하면 마지막까지 형통하라는 뜻이다. 나는 과연 이름대로 일생을 제대로 살아왔던가? 세상을 떠난 나의 이름 석자는 다른 사람들의 가슴 속에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

 

 

글 / 케네스강 (글무늬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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