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복한 이유

우리 때는 ‘어머니 날’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무슨 무슨 날을 챙기는데 적극적이었던 저는 해마다 어머니 날이 되면 빨간 카네이션을 엄마 가슴에 달아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 크진 않았지만 정성이 담긴 선물 또한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아빠도 챙겨야 한다’는 차원에서였는지 어머니 날이 ‘어버이 날’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 비해 아빠가 받는 어버이 날 혜택(?)은 상대적으로 미미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호주는 Mother’s Day와 Father’s day를 확실히 구분해놔 아빠들에 대한 혜택을 보장(?)해준 느낌입니다.

지난 일요일… Mother’s Day를 맞아 우리 가족이 딸아이 부부 집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올라가는 소리를 듣고 에이든이 맨발로 현관 앞까지 나와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에밀리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녀석이 책상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지 오빠와 함께 달려 나와 우리에게 대롱대롱 매달렸을 녀석인데 희한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뽐이 뭐해?” 하며 제가 다가가도 녀석은 뭔가에 초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좋아하는 할배와의 허그도 마다했고 뺨에 뽀뽀를 하려 해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작업(?)을 마친 뽐이가 우리에게 달려와 뒤늦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할매 할배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녀석인데…. 딸아이 부부가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우리는 놀이 삼매경을 시작했습니다.

에이든은 여덟 살짜리 청년(?)답게 탭으로 게임에 몰두했고 에밀리는 여느 때처럼 우리와 공놀이도 하고 퍼즐 맞추기, 가위바위보 놀이를 했습니다. 짓궂은 에이든은 멀쩡히 놀다가도 에밀리가 저와 공놀이를 할라치면 슬그머니 제 무릎에 올라 앉아 방해를 하곤 했습니다.

“오빠, 비켜. 나, 할아버지랑 공놀이 할 거란 말이야.” 하지만 에이든은 들은 체도 안 합니다. 게임도 해야 하고 한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할아버지도 동생으로부터 챙겨야 했던 겁니다. “뽐아, 오빠 잠깐 있다가 내려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게 잠시 에이든을 무릎에 앉힌 채 대화와 스킨십을 가진 후 “에이든, 할아버지 이제 뽐이랑 공놀이 할 게” 하자 녀석이 소파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내 할아버지를 되찾은 에밀리는 신이 나서 공놀이를 하며 연신 까르르 댑니다.

그럭저럭 세 시간 가까이를 녀석들과 어울리다가 일어서자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더 놀다 가라는 뜻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따 밤에 가.” 정말 고마운 이야기입니다. “이든아, 뽐아, 할매 할배 또 놀러 올 게. 너희도 할매 할배 집에 놀러 와. 할배가 맛있는 짜장면 끓여줄 게. 알았지?”

녀석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에밀리가 할아버지와의 뜨거운 만남까지 뒤로 하고 열심히 썼던 Mother’s Day 카드를 봤습니다. 감동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에이든은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또박또박 금세 적었을 것이고 이제 다섯 살 반이 돼가는 에밀리는 힘겹게 한 자 한 자를 써내려, 아니 그려놨습니다.

‘해피 마더스 데이. 할머니 사랑해요!’ 모르긴 해도 지 엄마가 써준 걸 보고 그대로 따라 쓴 것 같았는데 삐뚤 빼뚤 고생한 흔적,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받은 카드를 가보(?)로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집 두 보물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만들어준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아니, 시대는 그렇게 흐르나 봅니다. 어머니에게 해드리던 것을 내 자식들한테서 받다가 이제는 내 자식의 자식에게서 받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기에 우리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에이든, 에밀리 만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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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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