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행복

추운 건 어떻게 아는지, 단 한 녀석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양쪽에서 갑자기 툭툭 튀어나와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던 이구아나들도,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다니다가 가끔씩은 뜬금없이 우리에게 달려들어 시비를 걸기도 하던 오리들도 전혀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덧 가을의 끝자락… 이런 핑계와 저런 게으름으로 거의 한달 반 만에 산행에 나선 지난주 토요일 아침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평소와 달리 바람막이까지 단단히 챙겨 입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내디뎠습니다. 그날따라 트레킹 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야생칠면조 한 마리만이 우리를 보고는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부지런한 새들은 아침 일찍 합창을 계속했고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하얀 앵무새, 코카투는 수십 마리가 모여 시끌벅적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반환점을 돌아설 무렵, 비로소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1만 4000보 정도를 걸었습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계속 미루고 있는 GYM도 어쩌면 우리의 게으름 탓이 더 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배 모씨 표현대로 ‘앙증맞은 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트레킹과 GYM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시드니산사랑 멤버들은 한결같이 다정했고 함께 나누는 간식 속에서 피어나는 짧은 이야기 꽃은 예쁘고 건강하기만 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쉬지도 않고 곧장 잔디를 깎는 건 우리의 오래된, 못 말리는 버릇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그럴만한 기운이 있다는 건 참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기도 합니다. 아들녀석과 둘이서 앞 뒷마당 잔디를 깔끔하게 만들어놓는 동안 아내는 각종 해물들을 듬뿍 품은 맛있는 부침개를 부쳐냈습니다. 땀을 흠뻑 쏟아내고 철푸덕 주저앉아 마시는 막걸리 몇 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다음 날이 Mother’s Day라고 아들녀석이 ‘퓨전파스타’를 만들어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어머니 날 전야제(?)를 가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통해 요리하는 습관을 길러온 데다가 11년여 동안의 혼자 생활 동안 쌓은 요리솜씨가 더해져 녀석이 만드는 음식들은 제법 맛이 좋습니다. 마음 따뜻하고 가정적인 성품을 지닌 녀석에게 평강공주만 문득 나타나준다면 금상첨화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시간, 차에서 내린 에이든과 에밀리가 쏜살같이 달려와 우리의 품에 안깁니다. 전날, 엄마아빠랑 딸기농장엘 다녀왔다는 녀석들의 손에는 농장에서 직접 따온 딸기가 소복이 들려 있습니다. 알이 크고 굵은 건 엄마아빠가 땄을 것이고 작고 귀여운 사이즈는 두 녀석이 딴 것일 터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거 먹어봐. 정말 맛있어!” 고사리 손에서 우리의 입으로 들어온 딸기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딸기가 됐습니다.

맛있는 돼지갈비와 함께 시작된 Mother’s Day 점심식사… 때가 때인 만큼 우리도 아낄 건 아끼자는 아내의 제안에 따라 역대최소의 간소한 식사자리가 됐습니다. 에이든 에밀리 두 녀석은 아이들답게 먹다 놀다를 반복했는데 전날 깎아서 푸르름이 더해진 잔디밭을 달리며 물놀이, 공놀이, 잡기놀이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저렇게 뛰놀 수 있는 자연공간이 있어야 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습니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던 녀석들이 저에게 달려와 와락 안깁니다. 제가 녀석들의 등을 토닥거리며 “예쁜 내 새끼들…” 하자 에이든이 “어? 새끼는 나쁜 말인데?” 합니다. 한바탕 웃음소리가 지나갑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녀석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습니다.

“에이든, 에밀리, 할매 할배 집에 또 놀러 와. 알았지?”라는 말에 녀석들은 고개를 힘차게 끄떡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차창을 통해 보이던 두 녀석의 고사리 손은 녀석들이 탄 차가 멀어지고 난 후에도 계속 눈앞에서 어른거립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오롯이 함께 한 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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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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