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

딸도 없는 2대독자 외아들을 젊은 시절부터 혼자의 힘으로 오롯이 키워낸 어머니가 그 귀하디 귀한 아들을 장가보내던 날…. 어머니로서는 기쁨이나 보람보다는 왠지 모를 허탈감이나 상실감이 더 컸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결혼식 뒤풀이에서 동네사람들과 술잔을 주거니 권커니 하던 어머니는 결국 만취(?)상태가 됐습니다.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습니다. 동네 몇몇 친한 아주머니들이 “엄마 걱정은 말고 잘 다녀오라”며 우리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우리 어디 갈까?” 그때서야 비로소 신혼여행 생각이 난 우리는 옷 가방 하나를 단출히 챙겨 들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사전예약 이런 건 애초부터 없었고 곧바로 출발하는 비둘기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좌석이 꽉 차서 입석으로 탄 사람들까지 뒤섞인 열차 안은 이상한(?) 냄새와 함께 왁자지껄 시끄럽고 복잡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요즘이야 해외 신혼여행이 일반화 돼있지만 37년전 최고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연인은 둘이 하나가 되는 날 그렇게 신혼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대전역 앞 열팔식당에서 부대찌개와 소주로 저녁을 때우고 태광여관에 우리의 첫 둥지(?)를 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역시 즉흥적으로 속리산을 찾아 그곳에서 3박 4일 우리 둘만의 허니문을(?) 즐겼습니다. 저로서는 그녀와 하나가 돼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행복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는 신혼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착한 아내는 철딱서니 없는 남편과의 신혼여행 기간 내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좋아해줬습니다.

그리고 1년 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2박 3일 ‘결혼1주년 기념여행’을 가졌습니다. 허니문베이비로 태어난 아들녀석은 어머니에게 맡겼고 이번에도 역시 ‘우리 어디 갈까?’의 무 대책 여행이었습니다. 둘 다 청바지에 티, 캠퍼스커플 차림이었고 여행지는 촌스럽게도(?) 수덕사였습니다.

결혼10주년이 되던 해에는 철이 조금 들어서였는지 비행기 타고 4박 5일 제주도를 다녀오는 여행을 했습니다. 숙소도 특급호텔로 정하고 관광가이드를 겸한 택시기사가 우리 둘만 태우고 제주도 명소 곳곳과 맛집 여러 곳을 안내하는 나름 괜찮은 여행이었습니다.

어설프기 짝이 없었던 신혼여행, 얼떨결에 가졌던 결혼1주년 기념여행 그리고 나름 럭셔리(?)했던 결혼10주년 기념여행. 이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 둘이 가졌던 여행은….

여름휴가 등 어쩌다 가진 여행마다에는 어머니와 두 아이가 꼭 함께 했습니다. 아내로서는 가끔은 둘만의 여행도 꿈꿨을 텐데 찌질한 저는 거기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겁니다. 그럼에도 마음 착한 아내는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여행기회가 적었던 건 ‘그때는 자기가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바빴으니까’라는 말로 저에게 면죄부를 줍니다.

호주는 여행하기 정말 좋은 나라입니다. 우리는 시드니에 와서도 정신 없는 몇 년을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다행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함께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추억들도 많이 쌓고 있어 너무너무 감사한 요즘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모처럼 아내와 둘이 우리의 최애(?)여행지 중 하나인 저비스베이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슬쩍 하루를 더 욕심 내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박 4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우리는 드넓은 바다를 마주하며 낚싯대를 드리웠고 제 주먹만한 왕소라들을 만났습니다.

아내가 꼼꼼히 챙긴 메뉴 덕에 그곳에서도 우리는 삼겹살 버섯구이, 중국식 스팀보트 훠궈, 돼지고기 보쌈, 카레라이스, 된장찌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귀족처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아내 생일… 생일선물 대신 역시 문득 준비한 이번 여행에서도 저는 오히려 아내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늘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해 하는 마음 착한 아내에게 더 자주, 더 많은 선물로 생색을(?) 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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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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