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맛

문득 밤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의 향연… 한 켠으로는 은하수의 행렬이 은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드니에서 세 시간 남짓 벗어난 한적한 바닷가 동네의 밤 하늘은 그렇게 예쁘고 평화로웠습니다. 저만치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덤이었습니다.

눈 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 흔히 말하는 ‘불멍’이라는 걸 우리는 3일 밤 내내 원 없이 즐겼습니다. 그리고 불가에 둘러앉아 주고 받았던 수많은 이야기들… 우리의 화두는 늘 건강과 여행 그리고 행복입니다. ‘누구누구네는 어떻다더라’ 하는 류의 남 이야기는 우리의 대화 속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시드니산사랑 멤버 열한 명이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220km 떨어져 있는 마냐나 (Manyana)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여행 일정에 여남은 곳의 명소탐방도 끼워 넣었습니다. 아주 옛날(?)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정해진 목적지까지 몇 시간 동안 계속 운전만 하고 달려갔는데 한참 전부터는 오가는 길에 가볼 만한 명소 몇 군데씩을 끼워 넣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하니 세네 시간씩 걸리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지루하지도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목적지까지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더 긴 데도 말입니다. 원래 호주의 명소라는 게 한국의 그것들과 비교하면 ‘애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소박한 곳이 많지만 내려가는 길에 만난 봄보 (Bombo)의 헤드랜드 (Headland)는 그야말로 숨겨진 대박명소였습니다.

여행이 즐거운 건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이 주방에서 밥을 하고 맛있는 반찬들을 만들어내는 동안 데크에서는 남자들이 삼겹살을 노릇노릇 구워냅니다. 뒷마당 한가운데에서는 어느새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뚝딱 차려지는 밥상…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진수성찬과 다름 아닙니다. 3박 4일 동안 우리는 단 한시도 배가 고플 틈이 없었습니다. 밥이 됐든 고기가 됐든 떡이 됐든 과일이 됐든 주전부리가 됐든 ‘아이구 배불러!’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도 거친 데다가 해초가 계속 떠밀려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도 우리는 낚시로 연어 다섯 마리를 잡아 올렸습니다. 그 동네 연어가 유난히도 쫄깃쫄깃 식감이 좋아서 회로는 물론, 알루미늄 호일에 싸서 모닥불에 구워먹은 것도, 계란을 풀어 부쳐먹은 것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모닥불 속에서 뜨겁게 잘 익어 호호 불며 입천장을 데어가면서 먹었던 고구마와 감자는 추억이 돋는 맛이었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무슨 일이든 ‘누가 하겠지’가 아니라 ‘내가 먼저’라는 마음이었기에 우리에게는 티끌만한 트러블도 없었습니다. 이동할 때마다 여섯 대의 SUV가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유지하며 예쁜 길을 달리는 모습을 사이드 미러로 보면서 저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우리 둘만의 여행도 좋아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소중히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숙소 찾기부터 여행지 탐색 등 할 일이 많아지지만 우리는 늘 기쁜 마음으로 임합니다.

방 여섯 개, 욕실 다섯 개를 가진 그 멋진 집을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3박 4일 동안 2152불에 빌렸습니다. 여행기간 동안 1인당 식비는 87불, 숙박비는 193불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리는 ‘가성비 갑’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여행이라는 것… 결코 돈이 많아서, 시간이 많아서, 여유가 있어서 다니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여행에 대한 의지입니다.

돌아다니는 게 귀찮고 운전하는 게 싫어서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했던 한 멤버는 진정한 여행의 맛에 중독(?)돼 ‘다음 여행은 언제 갈 거냐?’고 다그치는(?) 입장이 됐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여행은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하루라도 젊을 때 해야 합니다. 여행은 우리의 행복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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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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