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2001년 9월 처음 시드니에 왔을 때, 럼프 형 표현대로 ‘석기시대인가?’ 싶어 깜짝 놀랐습니다. 오래 전 ADSL 2+가 도입된 한국에서는 인터넷이 그야말로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명색이 선진국이라는 호주에서는 아직도 ‘삐…’ 소리와 함께 전화모뎀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쓰면 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던 한국의 천리안, 하이텔 수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교민매체 현실은 더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사진식자를 컴퓨터로 출력해 더미시트에 붙인 후 그걸 매주 목요일 밤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인쇄소까지 갖다 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인쇄상태는 당연히 조악했고 대부분의 교민매체들이 직원 두서너 명을 두고 일하는 구멍가게(?) 수준이었습니다. 기사는 한국에서 보도되는 내용들을 심할 경우 오자와 탈자까지 똑같이 베껴다 쓰는 상황이었고 외부에서 받는 자료는 ‘보도자료’ 혹은 ‘Media Release’라는 타이틀까지 그대로 넣고 있었습니다. 기사작성의 기본을 모르는 때문이었습니다. 광고 또한 컨셉이나 카피라이팅 없이 내용을 잡다하게 늘어놓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한 교민매체의 초청으로 시드니에 왔던 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당혹스러움에 직면했습니다. 명함에 박힌 타이틀은 ‘편집인/사장’이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다 해야 했습니다. 회사에는 발행인 1명과 경리 겸 디자이너 한 명이 전부였고 오자마자 여기저기를 개처럼(?) 돌아다녀야 했던 저는 시드니 지리도 모르는 데다가 운전석도 한국과는 반대여서 적잖이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광고의 광자도 모르고 살았던 저로서는 광고를 따고 수금을 하는 일이 참 많이 낯설고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취재를 통해 쓸 수 있는 기사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고 인터넷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는 한국관련 기사도 최대한 우리 스타일로 바꾸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개념 없이 늘어놓고 있었던 광고도 우리한테 오면 나름의 컨셉과 카피라이팅이 도입됐습니다. 관절에 좋다는 콘드로이친 성분의 건강식품 내용으로 광고지면을 빽빽이 채웠던 기존 교민업체 광고를 ‘어머님, 아버님, 이제 편하게 주무십시오!’라는 헤드카피와 함께 광고다운 광고로 업그레이드해 그걸 들고 광고주를 찾아간 게 제 첫 번째 광고관련 업무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다른 매체에 대한 험담은 물론, 다른 매체 광고를 끊고 우리한테 와달라는 이야기를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주 이러이러한 매체들에 내셨던 광고를 이렇게 바꿔보면 좀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만들어봤습니다. 향후 광고 확대계획이 생기면 불러주십시오’가 전부였습니다. 다행이 저의 그 같은 노력과 전략이 잘 들어맞아 제가 소속돼 있었던 매체는 단 두 달 만에 매출이 세배로 껑충 뛰어오르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후 취업비자를 얻기 위해 일했던 다른 두 매체에서도 그랬지만 저는 늘 취재현장에 가있었고 더 좋은 광고제작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을 인수한 후에도 이 같은 저의 노력과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기사다운 기사와 다양한 읽을 거리 그리고 임팩트 있는 광고는 우리의 절대명제였고 광고를 구걸하지 않는 유일한 매체로서의 자리매김도 확고히 했습니다. 여타 매체들의 ‘광고 좀 내주세요’ 혹은 ‘도와주세요’ 또는 ‘살려주세요’라는 말 대신 우리는 좋은 기사와 광고로 광고주들이 스스로 찾아오도록 만드는 전략을 사용했던 겁니다.

지금은 일곱 개로 줄어있지만 당시 열 개를 훨씬 웃돌았던 교민매체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가격 후려치기’였습니다. 특히 한 매체는 집요하게 <코리아타운>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광고료 반값은 물론, 6개월 공짜, 1년 공짜 등으로 <코리아타운> 찐 광고주들을 유혹했습니다. 거기에 한국식(?) 접대 전략까지 동원했습니다. 우리식구들과 채스우드의 한 식당에 갔다가 ‘형님! 형님!’ 하며 우리 광고주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그 회사 사장 그리고 당황해 하는 광고주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온라인쓰나미에 의해 교민매체 시장이 계속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여기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들 말고 최소한의 양심과 기본은 갖춘 매체들이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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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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