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다 됐어…”

원래 호주라는 나라가 한국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긴 하지만 이곳 남자들은 한국 남자들에 비해 가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은 밤늦게까지, 거의 주말과 휴일도 없이 일에 파묻혀 지내다가 일과 후에는 밖에서 남자들끼리 먹고 마시는 분위기가 일반적인데 비해 호주는 그렇지 않은 요인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저만 해도 한국에 있을 때는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그렇지 않은 때에도 이런 구실과 저런 명목으로 동료 선후배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주말이나 휴일에라도 가족과 함께 있어줬으면 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눈빛을 뒤로 하고 자동차 시동을 건 적도 꽤 많았습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호주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지인의 사위는 평소 오후 세 시 반이면 퇴근해서 집에 온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에는 회사에 나가지 않고 가족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좋은 데도 가곤 한다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런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제가 워낙 늦게 집에 들어가다 보니 우리는 24시간 문을 여는 킴스클럽이나 까르푸 같은 대형할인매장에서 밤 열두 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쇼핑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남편,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걸 좋아하는 가족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호주에 와서도 처음 한동안은 먹고 살기에 바빠 여유를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특히 첫 2년 남짓 동안은 낮에는 교민매체에서 일하고 새벽에는 아내와 함께 세븐 데이로 울워스 청소를 하는 바람에 호주스러운(?) 삶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호주에 온지 4년이 조금 안돼 영주권을 받고 나서는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빠듯해 울워스 ‘홈 브랜드’ 제품을 애용하고 특별세일 하는 제품들을 주로 챙겼지만 가족과 함께 울워스나 Big W 같은 데를 카트를 밀고 여유롭게 다니며 우리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코로나19가 딴지를 걸기 전까지는 아내와 둘이서 한국식품점이나 울워스, 콜스, K mart, Big W 이런 데를 구경 삼아 여유롭게 다니는 게 작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촌스럽게도(?) 마이어나 데이빗존스 등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지만 꼭 필요했던 물건이 할인판매를 하거나 에이든 에밀리가 좋아할만한 물건들을 집어 드는 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에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나다니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에 저 혼자 한국식품점이나 울워스, 콜스를 찾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저는 이스트우드 울워스보다는 웨스트라이드를 즐겨 찾는데 그곳에 울워스와 콜스가 붙어 있어 가격비교가 가능한 때문입니다.

똑같은 물건이 울워스에서는 제값에 판매되는데 콜스에서는 반값세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콜스가 할인판매를 하지 않으면 울워스에서 반값세일을 하는 식입니다. 제품이 다르거나 퀄리티에 차이가 있지 않은 한 동일한 물건을 돈을 더 주고 살 이유는 전혀 없는 겁니다.

“울워스에 갔더니 에이든 에밀리가 좋아하는 프링글스가 반값이더라구. 이 크라프트 치즈는 콜스에서 30% 세일 하길래 두 개 샀고 매그넘 아이스크림도 반값세일이라서 세 박스 담았어. 자기가 사려고 했던 모니니 올리브오일도 마침 울워스에서 반값에 팔길래 여섯 병 집어왔고….”

“자기, 아줌마 다 됐다.” 장바구니에서 주섬주섬 물건들을 꺼내며 수다를 떠는 저를 향해 아내가 웃으며 던진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을 모습을 제가 지금은 너무너무 자연스럽게 보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알뜰한 아줌마 노릇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할 용의가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19가 얼른 사라져서 혼자 아줌마 노릇을 할 게 아니라 전처럼 아내와 둘이 여유롭게 카트를 밀고 여기저기를 다닐 수 있게 됐으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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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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