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바람 ②

실패한 것들을 나눠 반이 되게 하려는 마음가짐이 생활 속에 숨결처럼…

슈퍼마켓에서 사온 생고기를 포장을 뜯어 바비큐 그릴 위에 올린다. 누가 봐도 자기 한 사람 먹을 분량이다. 아니면 자기 식구 수만큼이다. 남의 음식을 넘보는 사람도, 자기 것을 권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호주 사람들의 공원 야유회나 누구네 집에서 식사하자는 제안엔 자기 것은 자기가 준비한다는 암묵적 약속이 있다.

 

01_ 친구는 음식이 남았는데 집에 싸가도 되겠냐고…

가방에서 껌을 꺼내면서도 ‘하나 하시겠어요?’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거나, 옆에 있던 사람이 ‘나도 하나 줘봐’ 하는 것이 한국적 정서다. 우리에게 ‘나누어 먹는다’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우정과 애정, 신뢰를 포함한 우호적 감정인 것과 동시에,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표현할 기회다.

어떤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 특별히 손이 많이 가는 한국 음식을 준비하면 그것만큼 고맙고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여러 사람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실패하는 때도 가끔 생긴다. 이런 날은 오히려 음식이 남게 마련이다.

시드니에 와서 알게 된 친구가 어느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날이 더웠는지 잡채에 들어간 야채가 살짝 상한 상태였다고 했다. 모였던 사람들은 주인의 마음을 생각해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많은 양의 잡채가 남은 것이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고 이 친구는 음식이 남았는데 집에 좀 싸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집주인이 흔쾌히 싸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걸 정말 먹으려고 싸달라고 했냐’고 내가 물었다. 친구의 답변이 참 정겹다. ‘사람들 떠난 뒤 그 많은 음식을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주인의 처지를 생각하니….’

 

02_그걸 어떻게 할지는 집에 와서 생각해봐도 됐을

오래 전 일이다. 어느 집에서 나도 비빔국수를 대접받은 적이 있다. ‘남으면 불 텐데….’ 5명 분량이라고 하기에는 소쿠리에 삶아 놓은 국수가 너무 많았다. 모임을 끝내고 서둘러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 한 끼를 먹여 보내려고 몸과 마음이 급해지셨나 보다.

그분은 커다란 양푼에 삶은 국수를 다 담아 비비셨다. 우리 각자에게 돌아온 양이 너무 많았던지, 먹성이 좋다 해도 접시를 들고 다들 속도를 못 냈다. 주인의 정성을 생각해 주저하던 젊은 친구들이 결국 자기 몫의 절반을 끝내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내 세대는 음식을 버리는 일이 천지에 죄를 짓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다. 더구나 우리 엄마 세대는 ‘내가 다 먹어 치우면 치웠지 어떻게 음식을 버리냐’는 철칙이 몸에 배셨을 터이다.

더 먹으라고 애써 권하는 분의 마음이 상할까 보아 나는 내게 주어진 양을 끝냈다. 그러자 그분은 처음만큼 국수를 내 접시 위에 다시 올려놓으셨다. 두 번째 받은 국수를 일회용 그릇에 담아 오면서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골똘했었다. 그때 남은 국수를 좀 많이 담아 달라고 할 걸….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할지는 집에 와서 생각해봐도 됐을 것 아닌가.

 

03_누군가 밍밍한 순두부찌개를 담아 달라고 나서주길

누군가 만든 음식이 맛이 있으면 그것은 얻어가고 싶다. 집에 있는 식구에게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맛 보이고, 또 저녁 한 끼가 편하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한 음식은 아무리 권해도 ‘우리 집에 그거 먹을 사람 없다’라고 손 사례를 치며 외면하지 않는가.

어느 모임을 가건 늘 끝까지 남아 뒷정리를 하는 친구가 멀리 유럽에 산다. 이 친구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아 남은 것들을 챙겨 온다. 슬픔이나 불편함 혹은 실패한 것들을 나누어 반이 되게 하려는 그녀의 마음가짐이 생활 속에 숨결처럼 깔려 있다. 그런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에게 순두부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을 배웠다. 조미료나 다시다를 사용하지 않고 국물 맛을 내기가 어려워 몇 번 만들어보다가 포기했던 메뉴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모임이건 음식을 나누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었지만, 방역이 풀릴 날을 대비해 연습 중이다.

하지만 내 음식 솜씨를 생각하면 순두부찌개가 맛없게 될 확률이 훨씬 크다. 한 솥 가득 줄어들지 않는 찌개를 끌어안고 어쩌지를 못해 절절 매는 진풍경이 벌써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다. 그때 누군가 내 밍밍한 순두부찌개를 담아 달라고, 제발 누구라도 나서주길….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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