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버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Oedipus complex)라는 정신분석이론이 있다. 남아가 어머니를 애정의 대상으로 느끼고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이는 무의식의 일종이라고 한다. 남아는 어머니를 독차지하고자 아버지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가지는데, 자신의 이러한 감정을 아버지가 알아채고 해칠지도 모른다는 거세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고 한다.

결국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인정하고 아버지에게 느꼈던 적대감을 억압하며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경쟁관계를 극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초자아가 확립된다는 거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갈등과 애증의 관계다. 아들은 아버지의 정신적인 카테고리를 벗어나고 싶어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자신의 정신적인 카테고리 속에 종속시키고자 한다.

아버지의 그것은 아들에 대한 무의식의 욕망이기도 하다. 이 욕망이 때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둔갑시키는 위선과 함께 아들의 자아를 파괴하는 비극을 잉태할 수도 있다.

소위 상류층이라 일컫는 재벌그룹이나 대기업소유주나 잘나간다는 중산층 이상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세상을 자부하며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강제한다. 아들 또한 맹목적인 아버지 뒤잇기를 당연시하지만 자신은 자아를 상실한 개체로 방황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를 이룩해야만 성공했다고 박수 쳐주는 천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평범하고 마음 여린 아버지들은 아들은 자신과 다른 길을 걷기를 소망한다. 제발 너는 애비를 닮지 말라고 잠결에도 중얼거린다.

어쨌거나,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든 걷지 않든 그것은 아들의 세상이며 아들의 선택이 돼야 한다.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아들은 온전한 자아를 상실한 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한다.

고국을 떠나 문화와 언어가 낯선 땅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어쩔 수없이 같은 민족끼리 모여 지지고 볶는 ‘교민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민자 아버지도 아들에게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새장 속 같은 교민사회를 벗어나 현지사회에 적응하며 현지인들과 어깨를 겨루며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갈망한다.

헌데 세상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아들의 세상도 힘겹다. 아들은 한국사람도 현지인도 아니라는 정신적인 방황을 한다. 그것이 이민자 아버지와 아들간의 치유되기 쉽지 않은 갈등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신의 세상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간에, 아들에게 자신보다 더 따뜻한 삶을,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단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전에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책임이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건 아들에게 무엇을 어떤 것을 소망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땀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족이 드나드는 자동차정비업소가 있다. 정기검진은 물론이고 사소한 고장이라도 나면 으레 찾는 정비소다. 근자에 들어서는 무슨 마가 끼었는지 우리 집 자동차가 수시로 말썽을 부린다.

아침에 나가보니 집 앞에 세워둔 내 차의 옆구리가 들이 받쳐 있었다. 며칠 전에는 며느리 차 뒤를 한눈 판 운전자가 받아버렸다. 끝인가 했었는데 지난 밤중에는 어느 못된 손이 내차 유리창을 깨부수고 차를 몰고 달아나려고 했던지 차 키 박스를 쑤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다.

그럴 때마다 툴툴대며 달려가는 단골 정비소다. 정비소에는 얼굴에 기름때를 묻히고 언제나 친절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이 있다. 일하는 모습이 마치 자기가 주인인 듯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나는 그 직원을 볼 때마다 어깨를 토닥거리고 성실함을 칭찬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직원이 정비소주인의 아들임을 알았다.

정비소주인은 아들에게 한번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기름때 절은 작업복을 걸치고 일 속에 파묻혀 기계와 씨름하면서 땀 흘리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화이트칼라를 좇으며 방황하던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아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아버지와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는 떳떳한 동행자였다. 그들은 바른 사람이 바른 사람을 남긴다는 본질에 충실한 아버지와 아들이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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