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너무나 작고 소중해서, 첫 만남에서는 녀석을 안아 드는 것조차도 겁이 났습니다. 2015년 4월 28일… 서른 시간 넘게 지 엄마를 힘들게 하고 나서야 녀석은 우리 앞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물론, 배냇짓이었겠지만 제가 녀석을 조심스레 안고서는 “너냐? 내 딸 고생시킨 놈이?” 하며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톡 쳤더니 녀석은 알아듣기라도 한 듯 입을 삐쭉삐쭉 했습니다.

그렇게 가슴 설레는 첫 만남을 선물했던 에이든이 어느덧 초등학교 2학년, 여덟 살의 인기 많은 꽃미남 청년(?)이 됐습니다. 점점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친숙해지고 있는 녀석이지만 할매 할배를 만나면 언제나 또렷한 한국어를 구사합니다. ‘어른한테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아빠의 교육에 따라 우리에게도 그러고는 있지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녀석의 반말이 우리는 훨씬 더 정겹고 좋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아기 때만큼 살가운 애교는 차츰 줄어들고 있지만 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찐하게 포옹을 하고 살을 부딪는 애정은 여전히 넘쳐납니다. 아무래도 사내아이이기 때문에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해지면서 점차 그 빈도와 강도가 더더욱 약해지겠지만 우리는 녀석이 단계별로(?) 우리에게 안겨주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사랑을 최대한 느끼려 합니다.

또 한 가지,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제가 우리 못난이(?) 에밀리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제 다섯 살 반을 향해 달리고 있는 녀석은 여자아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우리를 향한 애정이 날이 갈수록 폭발(?)하고 있습니다. 아내한테는 살짝 미안한 얘기이지만 녀석은 예전에 지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를 무지무지 좋아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에이든의 여덟 번째 생일을 맞아 우리 일곱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백만 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처럼 격한 반가움을 가진 후 딸아이네 집 발코니에서 고기파티를 가졌습니다. 그렇게 빙 둘러 앉아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저한테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생겼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가슴이 벅차 오르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어머니와 저, 단 둘뿐이었다가 아내가 생기고 아들녀석과 딸아이가 태어나고 사위까지 가족으로 더해져 감사하고 기뻤는데 에이든과 에밀리, 이 두 녀석의 합류는 그 동안의 그것과는 또 다른 모습의 가슴 벅참과 행복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에이든이 제 옆자리에 앉았고 그 옆으로 에밀리가 붙어 앉았습니다. 에이든은 여느 사내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발코니와 거실을 오가며 음식을 먹다가 TV를 보다가 태블릿을 보다가… 매우 분주했는데 그러다가도 가끔씩은 무심하게 제 무릎에 앉아 할아버지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 오빠가 자리를 비울 때면 에밀리가 제 옆에 바짝 달라붙어 할아버지에 대한 못 말리는 사랑 공세를 펼쳤습니다.

녀석은 저한테 미역국을 떠먹여 달라고도 했고 제 미역국 속에 들어 있는 고기를 탐하기도 했습니다.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진 삼겹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할아버지 입에 넣어주는가 하면 반을 뚝 잘라 지 입에 넣기도 했습니다. “뽐아, 할머니 입에도 고기 넣어줘.” 제가 귓속말을 하자 얼른 할머니 무릎으로 옮겨 앉아 애교를 떱니다.

늘 하는 얘기이지만 내 자식 키울 때는 잘 몰라서,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 아기자기한 정을 못 느꼈는데 손주들에게서 옛날에 못 느꼈던 참사랑을 만끽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디, 손주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녀석들에게서 받는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소중하기만 합니다.

다음 날 오후, 딸아이가 여러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에이든 학교 반 친구들 20여명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녀석들에게 조금은 더 다정하고 좋은 할아버지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럽게 해봤습니다. 이왕이면 할아버지가 돈도 잘 벌어서 녀석들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마구마구 사줄 수 있게 됐으면 더 좋겠지만 말입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5월 5일은 한국 ‘어린이 날’
Next article고향 가는 길_이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