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정말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종영된 주 원, 김희선 주연의 한국 SBS 드라마 ‘앨리스’는 이른바 ‘시간여행’을 주제로 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그들은 2020년과 2010년, 10년이라는 시간과 차원의 한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그림들을 그려냈습니다.

매 순간 순간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지나고 나면 후회하게 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매사에 신중하겠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같은 후회들을 계속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저에게 시간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1990년대를 돌려받고(?) 싶습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년 속에는 제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 들어 있습니다.

일과 사람에 미쳐(?)지냈던 만큼 저에게는 일면 황금기이기도 했습니다. 남들보다 빠르고 거침없었던 승진의 연속, 당대 최고의 여성지로의 스카우트 그리고 그곳에서의 약진, 다양한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여러 외부원고의 고정필자, 기업 및 대학 초청강사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던 시기입니다.

동료, 선후배 기자 사이에서도 어쩐 연유에서인지 인기(?)가 좋아 늘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바빴습니다. 하긴 대학시절에도 전공은 물론, 부전공과 교직까지 이수해가며 영자신문 기자, 야학 교사, 각종 아르바이트 등을 ‘인조인간’ 소리를 들으며 해냈고 그 와중에(?) 아내와의 소중한 사랑까지 일궈내는 부지런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혼 당시 물려(?)받았던 집 한 채 값의 빚을 검소하고 살림 잘하는 아내 덕분에 모두 갚고 결혼 4년 만에 기적처럼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데 이어 1992년에는 꿈에도 그리던 중동신도시 서른두 평짜리 새 아파트를 우리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남들에게는 부러울 게 없을 만도 했겠지만 저로서는 그 속에 되돌리고 싶은 후회와 아픔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유능한 기자, 좋은 동료 선후배로서의 저는 충분히 A학점짜리였을 수 있겠지만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서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봤자 D학점을 넘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기치 못하게 침몰위기에 처했던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월급 한푼 안 받고 동분서주했던, 지금 생각하면 열정은 좋았으나 참 부질없었던 1년 반 동안의 시간, 고위간부의 한 사람으로 생각 없이 싸인했던 회사 대출서류 때문에 떠 안았던 빚 보증…. 그때마다 저는 “자기가 회사나 일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라던 아내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 듣곤 했고 스스로 ‘망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깊이 빠져들었던 일부 사람들과의 관계… 그러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가족에게는 극도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가 한참 필요했던 중요한 시기에 저는 이런 이유와 저런 핑계로 밖으로만 돌았고 문득 정신을 차린 1999년, 두 아이는 어느새 중학교 3학년, 중학교 1학년이 돼 있었습니다.

제가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1990년대를 돌려받고 싶어하는 이유는 일보다는, 사람보다는, 돈보다는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가질 수 있었던 성취감과 즐거움은 가족의 소중함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습니다.

바보 같은 아내는 지금도 지인들 앞에서 “저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신랑이랑 결혼할 거예요. 세상에 우리 신랑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어요?” 하며 웃곤 합니다. 곁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저는 그때마다 가슴이 뜨끔뜨끔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제는 다시 태어나면 아내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미안함 없이 잘해주고 싶습니다. 1990년대로의 시간여행, 아니, 시간을 좀더 뒤로 돌릴 수 있다면 아내와 처음 만났던 1982년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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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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