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sofa

그 자리에 항상 있어 왔던 소파, 그것은 나의 모습을 닮았을 뿐 아니라…

패밀리 룸에 3-4인용 소파가 오래 전부터 눈에 거슬린다. 버건디 (burgundy)와 베이지 색깔 위에 장미꽃 패턴 줄무늬 천 소파는 수년을 사용했는데도 내 나이를 묻지 말라는 듯 멀쩡하다. 색깔만 세월의 흔적을 안고 바래 있을 뿐 어딘가 떨어지고 헤지는 곳이 있어야 버리기라도 할 텐데….

 

01_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소파에 무심히 앉아 있었다

발에 박힌 티눈을 의식 않고 사는 것처럼 가끔씩 눈에 거슬려 흘겨보는 때를 제외하면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파와 함께 한 시간이 벌써 여러 해 지났다.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을 고민하며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결심했던 그 당시에도 소파는 우리에게 무리다 싶을 정도로 값비싼 가구였다.

“천이 고급 이태리제라 당장은 부담이 되어도 아마 평생 쓰실 수 있을 걸요” 하는 세일즈맨의 자신에 넘쳤던 음성이 아직도 맴돈다. 커브 곡선으로 된 등받이는 평범하고 밋밋한 다른 소파들 사이에서 유독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처음으로 맘에 쏙 든 물건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큰 맘 먹고 사고야 말았다. 원하는 것을 가진다는 설레면서도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기꺼이 소파는 다른 이삿짐들 사이에 끼어 바다 건너 뉴질랜드 생활을 함께 했고 또 다시 바다 건너 호주로 와 지금껏 내 곁에 머물고 있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두 손 두 발 모두 놓고 소파에 무심히 앉아 있었다. 외로움이 물밀듯이 밀려와 주체할 수 없을 때 소파에 누워 펑펑 울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보이는 소파에 쉬면서 몸을 추스르기도 했다.

 

02_유행에 뒤떨어졌다고, 색이 바랬다고 버릴 수 없는 이 마음

그 동안 소파는 거친 풍파 속을 헤쳐 가는 나를 은밀히 응원하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지친 몸을 감싸 안아주고 나의 모든 시간들을 보듬어준 너.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색이 바랬다고 차마 버릴 수 없는 이 마음….

방학을 맞아 소파 커버를 바꿔 보려고 큰맘을 먹었다. 천을 뜨고 자르고 재봉틀을 하루 종일 돌렸다. 약간 내려앉은 스프링은 단단한 팀버로 보완하니 완전 새 소파처럼 느껴졌다.

며칠 동안 애쓰고 일한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며칠 못 가서 씌웠던 새 천을 거두어버리고 내 눈에 익숙했던 원래 소파 패턴을 다시 드러내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새로운 패션에 맞춰 심사숙고 해서 고른 천의 색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마치 어색한 옷을 다른 사람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소파의 오래된 디자인과 모던한 천은 마치 물에 뜬 기름처럼 서로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 항상 있어 왔던 소파. 그것은 호주에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닮았을 뿐 아니라 외국생활만 해왔던 젊은 시절을 떠나 보내며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03_가장 자연스러운 것에 참다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지름길을…

뼛속부터 한국 태생인 내가 타국에서 살아가는, 어울리지는 않지만 이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야만 하는 숙명 같은 나의 모습이 자꾸 소파에 오버랩 된다.

지난날의 외국생활은 흥분되고 신기하기만 했었다. 이국적인 자연환경과 생활 속에서 달라도 너무나 다른 문화환경을 매일 겪고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그 같은 과거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겠지…. 찬란하고 화려했던 젊은 시절의 터널을 지나와 보니 내 눈에 이제 다른 감정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억지로 입어야만 했던 어울리지 않는 천으로 된 옷들은 이제 난 훌훌 벗어야겠다. 애쓰지 말자. 나만의 모습으로 당당히 내가 사랑했던 나의 패턴을 드러내려 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에 참다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지름길을 찾아서….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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