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엔 /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가사 중 일부입니다. 지금의 저로서는 한없이 부럽기만 한 나이인데도 그는 서른 살 무렵에 벌써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점점 더 멀어져 간다’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20대 초 이런저런 이유들로 맞닥뜨렸던 6년동안의 긴 방황… 그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끝내고 다시 궤도에 진입한 저의 ‘서른 즈음’은 말 그대로 치열한 시기였습니다. 동기들보다 꽤 많이 뒤처졌던 시간들을 따라잡기 위해 다시 한번 ‘인조인간’ 소리를 들으며 밤낮없이 맹렬한 속도로 달렸더니 어느 순간 그들을 훌쩍 앞질러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서른 세 살에 ‘편집장’ 타이틀을 반강제로 떠안고서는, 대외적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금테안경을 썼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하지만 늘 그럴 줄 알았던 젊음은 40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정말이지 쏜 살 같이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서른의 딱 두 배인 예순을 5년여 전 시드니에서 맞았습니다. ‘예순 즈음’부터 주어지는 시니어카드… 여러 가지 다양한 혜택들이 많다지만 저는 2불 50센트면 하루 종일 트레인을 타고 어디든 다닐 수 있다는 골드오팔카드 그리고 GYM 등록이나 집 보험 가입할 때 약간의 할인혜택을 받고 있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펜셔너가 되면 매주 연금은 물론, 먼 지방 또는 타 주까지 기차를 타고 오랫동안 무료로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티켓이 1년마다 나온다지만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펜션 받을 나이에 거의 다가가고 있지만 어줍잖은 자격요건 때문에 저는 5년을 더 기다려야 혜택이 가능하답니다.

“좋기는…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나 싶어 서글펐지.” 저보다 앞서 시니어카드를 받았던, 지금은 펜셔너가 돼있는 선배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입니다. 20년 전부터 “내가 김 사장 나이만 됐어도 좋겠어…”라고 되뇌시던 코리아타운 찐팬 광고주 한 분은 어느덧 칠순을 넘어 팔순의 나이가 됐습니다.

지난주 아내 생일은… 예년보다는 ‘조금은 특별한 생일’이어서 The Entrance에 있는 최고급아파트 펜트하우스를 2박 3일 동안 빌려놨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온 가족이 특별한 추억을 만들려는 계획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린 손주들과 여행하는 게 안심이 되지를 않아 결국 다음으로 미루고 말았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 집에서 가진 조촐한 파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생일 축하합니다”를 소리 높여 외치는 에이든과 에밀리,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두 녀석의 뽀뽀를 받은 아내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점점 더 멀어져 간다’고 아쉬워했지만 노사연은 ‘바램’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 뿐입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요즘… 지난주 토요일에는 비가 주춤한 틈을 타 앞 뒷마당 잔디를 모조리 깎았습니다. 한동안 비가 계속 온다는데 비를 핑계로 우리 집을 텁수룩한 모습으로 내버려두기 싫어서였습니다. 구석구석 아내의 손길을 거친 정원과 텃밭도 막 머리를 다듬고 나온 선남선녀의 깔끔한 모습이 됐습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며 ‘나이야 가라!’고 외치는 씩씩한 노랫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서른 즈음’의 열정으로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아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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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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