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맨리 (Manly)로 가는 선상 (船上)에 그녀가 서있었다.

가슴을 반 이상 드러내고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는 상의는 거의 실종 그 자체였다.

이런 종류의 옷차림에 익숙한 이들이 보기에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한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세히 바라보고 있다.

반면 그녀를 보는 어른들은 민망해서인지 마치 그녀가 거기에 없는 듯 눈을 돌려버린다.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을 받으려고 하는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이 전해져 한 뺨만한 심장이 허허해진다.

차라리 여기가 배 안이 아닌 바닷가였으면…

서서히 움직이는 뱃머리에서 보이는 서큘라 키 (Circular Quay)는 밝음에서 어둠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아슬아슬한 빛들이 물위에 서성대고 있었다.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드니의 상징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언제 보아도 마음을 이리 저리로 움직이게 하는 이 광경을 오랫동안 담아두고 싶어 눈을 뗄 수가 없다.

연신 찍어대는 그녀의 핸드폰 플래시 방해만 없었더라면 그야말로 완벽한 야경이었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을까.

그녀를 다시 본 건 오페라 하우스 (Opera House)에서였다.

계단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한 임산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배가 나온 걸로 봐서는 임신 말기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어쩜 저렇게 옷을 입을 수가 있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불뚝 튀어 나온 배를 맨 살 그대로 드러내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마치 민둥산이 배 위에 올려 진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어 달려가 그녀의 배에 뭐라도 덮어주고 싶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자신의 즐거움에 방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일지라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녀를 동네에서 마주쳤다.

남자의 거친 고함소리가 거리까지 들렸던 바로 그 집이었다.

생기발랄했던 젊은 모습은 빛이 바랬고 술과 담배에 찌든 세월의 풍파를 맞은 흔적이 처진 살 위에 새겨진 문신 자욱 위로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피터의 엄마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피터는 교실에서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였다.

문을 들락날락, 수업 중 갑자기 복도에 뛰어 나가 이쪽저쪽을 살피기도 하고, 목을 빼어 다른 반 교실을 기웃기웃하다가 친한 친구라도 보이면 복도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교실 안에서 공부하고 있는 애들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이 세상엔 오로지 자신만 있는 듯, 남을 위한 배려나 관심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그녀와 닮아 있다.

학기 초만 해도 깨끗하게 입고 다녔던 교복은 오랫동안 세탁하지 않은 듯 악취를 풍겨 근처에 있는 아이들이 곤욕을 치르곤 했다.

엄마가 교복을 빨아주지 않고 본인도 어떻게 할지 몰라 그냥 입고 다닌다고 했다.

어젯밤 게임하느라 잠을 못 잤다면서 한 쪽 팔을 뻗어 고개를 파묻고 뒷줄에서 잠을 자는 것은 예사였다.

그에게 공부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 귀에 경 읽기이다.

어쩌다가 겨우 한 문제라도 펜을 들어 풀려는 자세를 보일 때에 맞춰 칭찬을 해주면 흡족한 미소를 억지로 참아내면서 입술만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마음껏 웃지도 못하는 그가 겪어왔던 시간들이 궁금하다.

 

세대가 교체되면서 이 세상은 점점 나아져 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이전 세대들의 특성과 성품을 그대로 복사하고 배우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 만나는 문제아들의 대부분이 온전한 부모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서적, 이성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부모 아래서 십대라는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의 삶이 진심으로 걱정된다.

운전면허증처럼 부모 자격증을 따야 부모가 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이웃이 되어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내 마음은 사깃가루 먹힌 연실처럼 따갑고 팽팽하다.

내일은 더 많이 피터를 칭찬해 줘야겠다.

피터가 자연스럽게 마음을 활짝 펼 수 있게 될 때까지….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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