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친구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 갇혀 있는 동안 할 일 거리를 찾아보았다. 그 동안 미루어왔던 옷장을 정리하고, 여기저기 흩어졌던 사진을 모아보기로 했다. 쿠키 박스에 아무렇게나 넣어 두었던 사진을 쏟아 내니 추억 속의 친구들이 마구 미끄러 진다. 마치 얼굴을 대하는 것처럼 반갑고 그립다. 요양원에 있는 친구,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친구도 있어서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우리 집 정원의자에 남편과 같이 해맑게 웃고 있는 선희의 사진이 눈에 띈다. 사진 속의 날짜를 보니 2004년 2월로 되어 있다.

그녀와 나는 학교 친구로 졸업 후에 더 친해졌다. 서로 가까운 곳에서 일한 관계로 퇴근 후에는 명동거리를 누비며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러 다녔다.  싱그러운 처녀 시절을 함께 보내던 어느 봄날에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그녀가 미안한 얼굴로 속삭인다.  홀로 된 나는 내심 서운했지만 행복한 데이트 소식에 내 마음도 한껏 부풀었다. 새털구름이 보이고 부드러운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까운 토요일 오후, 그녀가 남자 친구와 야구 구경을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를 몇 번 만나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둘 중에 끼는 것 같아 사양했더니 그가 직접 전화까지 하면서 꼭 나오라고 한다. 약속한 동대문 야구장 앞으로 가 보니 그의 옆에 키가 작고 단정한 모습의 한 남자가 인사를 한다. 그 인연으로 작은 남자와 나는 여보, 당신이 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포항으로 내려갔다. 우린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허리가 조금은 굵어진 중년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녀들도 비슷한 또래이고 멀지 않은 곳에 살게 되어 주말이면 자주 만났다. 우리가 호주로 이민 와서도 한국에 나가면 쾌활한 그의 익살과 유머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녀의 딸이 우연히 브리즈번 (Brisbane)에 사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더 자주 연락하게 되었다. 출산을 돕기 위해 딸 집에 왔던 친구부부는 귀국하는 길에 시드니 우리 집에 들러 이틀 밤을 같이 지내기로 했다. 대학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친했던 친구가 온다는 소식에 남편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팔팔하고 신나 했다. 짧은 이틀 동안 가야 할 곳도 많았고 먹을 것도 많았다. 친구 남편은 당뇨가 있어 저녁에는 지쳐 보였지만 여전 위트가 넘치고 마른 몸으로 개그까지 하며 우릴 웃겼다. 그리고 4년후, 그는 뇌종양으로 급하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뒤뜰에서 찍은 사진만 남겨 놓고.

소식도 없이 아들을 결혼시키고 혼자 생활하는 친구가 마음에 걸려 서울에 갈 때마다 연락한다. 전화를 해도 그녀는 반가워하지 않고 만나자고 해도 이유를 대며 거절한다. 교회에서 주최하는 싱글모임에 참석하며 잘 지낸다는 소식만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  혹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가 기대를 안고 동창모임 날짜에 맞춰 볼일 차 서울에 갔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약간 놀라면서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만나자고 해도 그냥 돌아서는 그녀의 처진 어깨를 보니 작은 키가 더 작게 보였다.  친구가 왜 나를 거절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아픔이 있나? 무슨 서운한 점이 있나? 답답했다. 그렇게 메시지와 전화에 무 응답인 채로 몇 해가 흘렀다.

치과 치료 차 들른 서울의 봄은 포근했지만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은 뿌옇다. 동창회가 있다 하여 나가보니 그녀가 보였다. 작은 종이 가방을 내게 주며 “요즘 길을 못 찾아 잘 나오질 못해” 하면서 미안한 기색을 보인다. 얼굴이 검어 지고 여윈 것 같아 “어디 아프니?” 물어도 고개를 저으며 급하게 돌아선다. 종이 가방을 열어 보니 갈색의 상의였다. 새것이 아닌 것처럼 양 어깨 쪽의 색이 심하게 탈색되어 있다. 딸 주려고 샀지만 너에게 맞을 것 같아 가져왔다고 했는데?  좀 의아했지만 그냥 무심하게 넘겼다.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울적한 소식이 왔다. 동창모임에도 한동안 보이지 않아 친구 몇 명이 고층 아파트 그녀 집을 찾아 갔다고 한다. 그녀는 문도 열어주지 않고 문전 박대를 했고, 살짝 밖에 나온 도우미 아줌마에게 그녀의 근황을 들었다고 한다. 심한 우울증으로 낯에도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살며, 심한 낯가림을 해서 아들 외에는 아무도 왕래하지 못한다고 한다. 애처가를 자처하며 아내 손을 꼭 잡고 다녔던 그녀의 남편, 목소리도 작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내숭이 그녀, 남편 없는 그늘진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면 그리 사나워졌을까?  마음이 허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뒤뜰로 나가 본다. 그들이 앉았던 의자는 아직도 그대로 있건만… 예전에 그녀의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남편은 친구가 너무 빨리 갔다고 한숨을 쉬면서 침통해 한다.

몇 년이 지나고 유럽 여행길에 서울에 머물게 되었다. 여러 친구를 통해서 어렵게 그녀의 아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며칠 전에 양로원에 들어 갔다고 한다. 애처로운 마음에 친구가 그냥 보고 싶다. 아들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거친 욕을 해서 마음만 상할 거라고 만류한다. 집에서 혼자 생활이 어려워 도우미를 두었지만 엄마의 사나운 행동에 사흘이 멀다 하고 나가 버렸고, 자녀가 셋이나 있고 일도 하면서 엄마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들은 그녀를 양로원에 보낸 것이 죄스러웠던지 엄마의 근황을 알면서도 연락 없는 누나를 원망했다.

사진 속의 친구는 화사하고 예쁘다. 그녀 남편은 사랑스런 표정으로 아내의 어깨에 팔을 얹고 있다. 호주의 하늘을 한국으로 수입하고 싶다던 친구야, 코로나가 끝나고 하늘 문이 열리면 태평양 건너 너를 꼭 보러 갈게,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좋아 욕을 해도 좋아.

 

 

글/ 이정순 (글무늬문학사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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