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오욕

‘한국사회는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 또 집단과 개인의 먹이사슬의 단계가 너무나 적대적이다. 잘못된 것을 보고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성인 거다.’ 글쟁이 김훈이 한 말이다.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고 질타하면 권력을 움켜쥔 무리들이 거세게 반항한다. 먹을 것을 던져주면서 조작을 획책한다. 하수인은 특정된 언론집단이다.

언론의 생명은 사실을 기초해서 사실 위에 곧은 신념을 세워야 하는데, 특정 언론은 비틀린 신념 위에 사실을 세우고 있다. 언론은 적대성을 조장하며 자신들의 욕망을 주도하는 사회세력으로 존재하려고 한다.

언론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은 기득권집단의 꼭두각시다. 돈과 권력을 다 가지고 기회마저 독점해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키우고 있는 극소수의 앞잡이일 뿐이다. 촛불로 이루었던 민주주의는 기득권집단과 그들을 감싸는 특정 언론에 의해 위태위태 하다. 그들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다.

잘못된 것들에 분노를 느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성마저 공격하는 정의에 눈먼 고국의 뒤틀린 언론을 가당찮게도 교민사회에서 그대로 흉내 내는 쓰레기들이 있다. 그들은 죽음의 불빛을 생명의 빛이라고 생떼를 쓰며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어설프게 언론이라는 같잖은 행세를 하는 거다.

나는 2021년에 오클랜드 한인회장 선거의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 한국의 작은 동네 동장선거 정도로 생각했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상대를 중상모략 하는 마타도어는 기본이었다. 마치 한 나라의 지도자선출이나 되는 듯 착각하는 광란이었다. 음식과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굿판이었다. 그 저열한 굿판에 특정 교민언론이 앞장서고 있었다. 힘겹게 선거를 치렀다.

시간은 망각의 어머니라 했던가? 2023년에 나는 흡사 무엇에 홀린 듯 전혀 변하지 않은 한인회장 선거판 선관위원장을 또 맡았다. ‘공정과 원칙’을 굳건히 지킬 확실한 사람이라는 부추김에 나의 이성은 헛것과 허세에 들떠버렸던가 보다.

선거관리위원들은 낮에는 생계를 위해 직장에서 일하고 밤이 되어서야 선거관련 일을 할 수 있었다. 한 후보자의 스탭이라는 인간이 그렇게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을 선관위원으로 발탁한 자체가 잘못된 선관위라고 공격을 했다. 선관위원들을 한편에 치우친 사람들일 거라고 의심하는 비틀어진 자의 항변이었다. 마치 한인회장 선거가 대통령 선거라도 되는 듯 환상에 빠져있는 넋 나간 인간들의 선거놀이였다.

한인회장에 출마한 두 후보자를 한자리에 앉히고 상대를 음해하지 않는 깨끗한 선거를 하자고 했다. 두 후보자는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후보자들의 등뒤에는 트집, 의심, 모략을 주도하고 음침한 뭔가를 노리는 어둠의 세력들이 있었다. 이 좁은 교민사회에도 정의는 없었다. 나는 어쩌면 인간의 양면성이 숨어있는 정치를 모르는 단순한 바보였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디뎠음을 알았을 때 ‘발등을 찍고 싶다’고 하는 거다. 나는 다시 맡은 선거관리위원장이라는 자리에 참으로 발등을 찍고 싶었다.

산수 (傘壽)를 바라보는 나는 나보다 한참 어린 한 후보자의 후견인이라는, 슬리퍼 찍찍 끌고 체육복 걸친 양아치로부터 은근한 협박을 당했다. 특정 후보자의 선전지로 타락한 교민지 발행인이라는 인간이 탁자를 내려치는 행태에 나의 알량한 자존심마저 무참했다.

그들은 무지와 편견에 오염돼 있었다. 맹목적인 적대감에 매몰돼 이성을 잃어버린 무리들이었다. 선관위원장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확증 편향은 아무리 ‘공정과 원칙’을 주장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서글픔에 앞서 분노에 지쳐갔다.

설마설마 했던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 또 집단과 개인의 먹이사슬의 단계가 극도로 적대적이라는 고국의 복사판이 이 손바닥만한 교민사회에도 뿌리내려 있음을 나는 확실하게 보았다.

몇 날을 후회하며 이 분노와 오욕의 자리를 벗어날 기회를 살폈다. 하지만 무책임하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빠져도 한인회장선거는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투표를 위한 제반 준비를 완벽하게 마무리한 투표 5일전 나는 선거관리위원장직을 사임했다. 끝까지 선거를 관리해준 선관위원들에게 죄스럽고 감사하다.

오클랜드에 거주한다는 교민 2만명의 10%도 미치지 못한 사람들의 투표를 가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 교민을 대표한다는 허풍과 광란이 헛웃음 짓게 한다. 그 우물 안의 집단이, 그 콧구멍 속의 권모술수가, 그 게딱지 같은 교민 언론이라는 비열함이 분노와 오욕의 뿌리다.

나는 하이에나가 어슬렁거리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홀로 길이 아닌 길을 걸으며 새로운 길을 꿈꾸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Previous article온라인 코리아타운 1201호 (2023년 7월 6일)
Next article프랜차이즈 계약 시 유의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