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할아버지 껌딱지? #9212022-07-23 22:48

할아버지 껌딱지?!

 

정말 이상한 녀석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랑 잘 있다가도 지 엄마 아빠가 오면 섭섭함이 느껴질 만큼 쌩 하고 돌아서 가버린다는데 이 녀석은 신기할 정도로 우리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합니다.

 

지 엄마 아빠랑 우리 집에 오면 녀석은 쏜살같이 우리에게로 달려옵니다. 그리고는 엄마 아빠가 밖으로 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에이든, 엄마 아빠한테 빠이빠이 해야지하면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손만 흔듭니다.

 

그런 녀석이 제가 밖으로 나갈라치면 아주 난리가 납니다. 어떻게 아는지 살그머니 문만 열어도 녀석은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옵니다. 때문에 별채 서재로 내려갈 때도, 심지어 앞마당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녀석을 안고 나가야 합니다.

 

외출할 때도 어찌어찌 녀석 몰래 빠져나가고 나면 차가 없어진 걸 알고는 대성통곡을 한답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녀석은 그렇게 한참 동안 저를 찾으며 울다가 지쳐 잠이든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에이든을 향해 아내는 할아버지 껌딱지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소파에 앉을 때도 녀석은 제 무릎에 앉기를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제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녀석과 저 단 둘이서만 몇 시간 동안 집에 있게 됐는데 제 옆에서 한참을 놀던 녀석이 슬그머니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녀석을 조심스레 안아서 우리 침대에 눕혔더니 완전히 곯아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녀석에게는 고성능 타이머가(?) 장착돼 있습니다. 정말이지 희한하게도 녀석은 한 시간이면정확히 잠에서 깹니다. 그리고는 예의 그 살인미소를 날리며 거실로 나오곤 합니다.

 

그날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한 시간이 되자 자로 잰 듯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는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눈을 비비며 칭얼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녀석을 제가 얼른 품에 안았는데 어쩜 그렇게 폭 안길 수가 있는지….

 

그렇게 녀석은 제 품에 안겨 30분을 더 잤습니다. 더운 날씨 탓에 녀석도 저도 둘 다 땀에 흠뻑 젖었지만 부스스한 얼굴로 저를 향해 눈웃음을 치는 녀석으로 인해 저는 또 다시 무장해제를 당했습니다.

 

분명 이상현상입니다. 지 엄마 아빠보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정상입니다. 게다가 할머니보다도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고 따르는 건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언젠가는 녀석도 제 정신을(?) 차리고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를 그리고 지 엄마 아빠를 더 좋아하게 되겠지만 저는 지금의 이 꿈같은 시간들이 조금 더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참 미안하게도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뒹굴며 놀아준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는 에이든을 통해 뒤늦은 사랑을 배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녀석이 왜 그렇게 예쁜지제 곁에 붙어 있는 녀석의 얼굴이며 팔이며 다리를 계속 만지작거리게 되고 틈만 나면 뽀뽀를 해댑니다. 심지어 녀석이 기저귀를 갈 때도 엉덩이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합니다. 딸아이는 더럽게 왜 오줌 묻은 엉덩이에 뽀뽀를 하느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지만 저는 하나도 더럽게 느껴지지가 않으니 이 또한 신기한 일입니다.

 

성격이 좀 별난 저는 다른 사람이 먹던 음식은 아내 것과 딸아이 것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안 먹었는데 에이든이 먹던 건 뭐든 먹습니다. 심지어 녀석이 지 입에 넣었다가 빼서 제 입에 넣어주는 것조차도 맛있습니다.

 

녀석도 그런 제가 재미있는지 그때마다 한껏 눈웃음을 치며 박수를 칩니다. 언젠가 녀석이 저를 배신해도(?) 저는 결코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동안 녀석은 충분히 차고 넘치는 사랑을 저에게 줬기 때문입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