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헛꿈? #9032022-07-23 22:38

헛꿈?

 

우리가 현관 쪽으로 가자 녀석이 종종걸음으로 따라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녀석은 우리가 밖으로 나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 뒤에서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녀석이 지 엄마를 붙들고 서서 항공모함(?) 만한 지 엄마 신발을 신는 중이었습니다. “, 신발 신고 우리 따라 나오려고 저러는 거야하는 아내의 말에 우리는 얼른 현관문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녀석의 대성통곡은우리가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까지도 엄청 크게 들려왔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녀석은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모처럼 딸아이 집에 갔다가 생긴 일입니다. 원래 30, 길어야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 성격인지라 그날도 우리는 짧게 딸아이와 에이든과의 만남을 갖고 일어선 건데 녀석이 그런 장면을 연출한 겁니다.

 

녀석은 요즘 들어 우리 집에 있을 때도 역시 항공모함 만한 우리의 실내화를 질질 끌고 위태위태하게 그러나 제법 씩씩하게 거실을 누비곤 합니다. 그리고는 뭐라고 열심히 떠들어댑니다.

 

완전히 외계어(?) 같은 말을 하던 에이든이 요즘은 웬일인지 발음이나 억양이 중국어 비슷한 말을 하곤 합니다. “에이든, 넌 언제 한국 말 할래?” 하는 제 이야기에 녀석은 알아듣기라도 하듯 씩 웃곤 합니다.

 

항상 눈을 찡긋거리며 웃는 걸 좋아하는 에이든은 분명 마음이 따뜻한 아이인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녀석은 먹돌이(?)가 됐습니다. 특히 귤과 포스틱에 완전히 꽂힌 녀석은 지가 한입 베어먹고는 ~하면서 아내나 제 입에 넣어주는 걸 좋아합니다.

 

녀석은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우리한테 와서 아내나 제 손을 잡고 원하는 곳으로 이끌고 갑니다. 이제 그 조그만 입으로 지가 원하는 걸 외계어나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할 때면 그 귀여움은 훨씬 더해질 것입니다.

 

식품점에 가면 우리는 녀석의 먹는 모습이 떠올라 이것저것들을 녀석 중심으로 집어넣곤 합니다. 하는 짓 하나하나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녀석에 관한 한 정말이지 완전 무장해제입니다.

 

내 손자녀석이 어릴 때는 그저 할아버지 밖에 몰랐어요. 집에서나 밖에서나 항상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고 농장에 갈 때도 안 떨어지려 해서 데리고 다니곤 했어요. , 그런데 이 녀석이 유치원에 들어가더니 옛날 같지 않아지는 거예요.”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던 손자는 할아버지 껌딱지였던 시절을 잊어버리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9학년이 돼서는 교회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할아버지와는 2주에 한번 용돈 줄 때나 얼굴을 마주할 정도가 됐답니다.

 

내가 매주 김 사장 칼럼 보면서 김 사장도 나처럼 배신의 아픔을 겪게 될 텐데 지금 헛꿈을 꾸고 있구나하며 혼자 웃곤 해요.” 저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 한 광고주께서 얼마 전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선배들을 통해 들은 자식의 자식에게서 받은 배신(?) 이야기들이 우리에게는 이미 충분한 예방주사가 됐습니다. 에이든도 조금씩 조금씩 커가면서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사실을,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엄마 아빠보다도 우리를 더 좋아하는 녀석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같은 모습은 달라질 겁니다. 지금 이 순간, 녀석이 우리에게 무한사랑을 쏟아주는 시간들을 우리는 감사하게 마음껏 즐기고 있는 겁니다. 세상 모든 자식들과 세상 모든 자식의 자식들이 그러하듯이 에이든도 분명 내꺼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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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